충주 변두리 아파트의 경로당에서 만난 노인들 중,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육명순 할머니(1928년생)도 18살 되던 해에 고향 인근 마을로 시집을 갔다고 했다. 이 할머니 역시 시집살이 중에서 가장 몸 고생을 했던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식구들의 빨래였다고 회고한다.
“그 때 경상도 우리 사는 데서는 점심때면 늘 김치하고 콩나물을 넣고 ‘갱시기죽’을 끓여먹었어요. 여남은 명이나 되는 식구들의 점심을 차려내고, 그 많은 식구들의 옷을 빠는 일을 나 혼자 감당했거든요. 솥단지 하나에는 죽을 끓이고, 또 한 솥단지에는 잿물을 넣고 빨래를 삶느라 뛰어다니다 보면 그야말로 혼이 나갈 지경이었지요.”
옷을 다 빨아서 마당의 빨랫줄에 널어놓고서 잠깐 숨을 돌리고 있노라면, 드디어 시어머니가 나타나 시찰에 나선다. 시어머니가 빨래줄 사이를 천천히 거닐면서 가령 버선의 뒤꿈치나 저고리의 소매 끝에 밴 때가 제대로 빠졌는지를 일일이 점검하는 동안, 며느리는 흡사 부대장의 내무사열을 받는 하급 병사처럼 가슴을 조이며 그 뒤를 따른다.
-꼬득꼬득하게 마르거든, 때 맞춰 걷어서 다듬이질 하그라.
시어머니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뜬다. 별 다른 지적사항이 없으니 일단 합격이다.
“그 때 내가 나이는 어렸어도, 빨래를 비롯해서 힘든 집안일들을 야무지게 제법 잘 했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한 번도 내 면전에서는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법이 없었어요.”
잘 하면 당연한 것이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모진 지청구의 구실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물동이를 이고가다 만난 청송댁 할머니가, 새댁인 육명순을 보고는 뜻밖의 말을 건네온다.
-니는 시집오기 전에 살림살이도 안 해봤다면서 우째 그리 일을 잘하노?
-벨 말씸을 다하시네예. 잘 몬 한다고 만날 야단맞심더.
-아이다. 너그 시어무이가 너 일 잘 한다꼬 며느리 자랑이 대단하던데?
바깥에서만 자랑할 게 아니라 당사자인 며느리한테 칭찬을 해주었더라면 신이 나서 더 잘 할 터인데, 그 시절의 시어머니들은 어찌 그리 칭찬에 인색했을까?
새색시 육명순에게도 물론 여느 며느리들처럼 시집살이는 힘들고 고단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시어머니가 ‘덜 독한 편이어서’(육명순 할머니의 표현) 그만하면 견딜만했다. 문제는 난봉꾼인 남편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남편이 외출할 차비를 한다.
-내 두루마기 어뎄노?
-저녁밥 묵자마자 우데를 가실라꼬 그러능교? 또 화투치러 가시는 깁니꺼?
-내사 화투를 치러 가든 색시집엘 가든, 니가 와 꼬치꼬치 알라꼬 그라노?
-아버님이 자꾸 당신 어디 갔느냐고 물어봐싸이께네 그라지예.
-시끄럽다마. 옷이나 퍼뜩 내온나.
신랑은 그렇게 새색시로 하여금 독수공방을 하게 하고는 화투판이며 색주가(色酒家)를 돌아다니다가 다음 날 아침에야 들어오기 일쑤였다. 철없는 남편의 그 못 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시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할 만도 한데…육명순은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침에 시아버지가 가만히 나를 불러서는, 신랑이 저녁에 나갔다가 언제 들어왔느냐고 넌지시 물어요. 그럼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하지요.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초저녁에 바로 들어왔다고…. 참말이냐고 재차 다그쳐 물어도 역시 그렇다고 대답을 해요. 남편이, 그것도 갓 결혼한 새신랑이 색시 혼자 남겨두고 도박판으로 색주가로 돌아다니면서 외박을 밥 먹듯 해도,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덮어주었느냐고요? 글쎄요. 왜 그렇게 멍청하고 바보 같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땐 그저 어른들 입에서 큰 소리 나는 게 두려워서 그랬는데…어휴, 지금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