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세도농협 횡령, 개운찮은 뒤끝

공선회 허술한 운영 틈타 농협 직원이 13억원 횡령

공선회원들 무관심 속, 허술한 운영구조 개선 없어

  • 입력 2022.09.18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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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충남 부여 세도농협(조합장 백승민)에서 직원이 공선회의 자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 수억원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공선회의 허술한 운영구조가 단초를 제공한 것인데, 문제는 사건 이후에도 이 허점들이 잘 메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도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업무를 총괄하던 상무 A씨는 부임 이후 4년 동안 세도농협 방울토마토 공선회(회원 38명, 연매출 170억원)의 자금 13억3,000만원을 횡령했다. 공선회의 자금 관리와 행정을 농협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해 말 횡령 정황이 포착되고 농협중앙회 감사가 이뤄지자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현재 농협과 공선회는 횡령금액 중 절반을 회수했고 나머지 절반을 회수 중에 있으나 어느 정도까지 회수가 가능할지 불확실한 상태다.

확정 피해 규모가 얼마일지를 떠나, 묘한 것은 어떤 명목의 돈을 어떤 수법으로 횡령했는지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회 감사가 ‘횡령금 총액’ 외 대부분의 감사 결과를 비공개에 부쳤고 공선회장 B씨가 이에 수긍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 내용을 대강이나마 파악했다는 B씨는 △매우 복잡한 자금세탁이 이뤄져 회원들이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고 △자금세탁 과정에서 일부 회원들의 명의가 차용돼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으며 △공선회뿐 아니라 농협의 회계와도 얽혀있다는 이유로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지도, 중앙회에 추가 정보를 요구하지도 않고 있다.
 

부여 세도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농협 공선회는 산지유통센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농민들의 자조조직이지만, 회원들이 관심을 거두고 농협에 의존하려 한다면 언제라도 횡령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부여 세도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농협 공선회는 산지유통센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농민들의 자조조직이지만, 회원들이 관심을 거두고 농협에 의존하려 한다면 언제라도 횡령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원인을 모르면 재발방지 대책도 방향을 잡을 길이 없다. 다만 공선회 임원진은 재발방지를 자신하고 있다. 공선회 자금 통장 7개를 모두 전임 회장 개인 명의로 개설해 A씨 손에 맡겨놨었는데, 사건 이후 이 통장들을 공선회 명의로 돌려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멍은 통장 명의 문제만이 아니다. 회원들에 따르면 이 공선회의 운영은 유독 ‘불투명’ 문제가 도드라진다. 가령 수입·지출 항목을 세세하게 기재해야 할 공선회 결산서류가 겨우 10개 내외의 항목으로 뭉뚱그려져 있고 박스비는 변동 사실과 계약 내용을 명기하지 않은 채 ‘실비금액’으로 처리하고 있다. 거래처별 방울토마토 판매단가 역시 공개되지 않으며 소리소문 없이 회원들의 출자금이 감자되는 일도 발생한다.

최근엔 잉여금 3억원(횡령금 일부회수분)을 배당하는 과정에서 배당금 지급단가를 연도별·회원별로 차등 책정했는데, 임원들이 지급단가나 그 산정식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자신이 받은 돈이 정상적으로 지급됐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선회장 B씨는 “당시 임원들이 결정해 총회의 승인을 받은 사안”이라며 “최근 임원회의에서도 이와 관련된 일체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만약 이번 횡령이 이처럼 불투명한 운영구조와 연관된 것이라면 통장 명의변경만으론 상황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셈이며, 설령 계좌를 이용한 순수 ‘숫자 놀음’이었다 하더라도 언제든 다른 방식의 횡령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발족한 지 15년이 지나도록, 심지어 수억원의 피해를 낸 이번 사건을 겪고도 어째서 공선회는 스스로 구멍을 메우지 못하고 있는 걸까. 공선회장과 몇몇 회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유는 결국 공선회에 대한 회원들의 ‘무관심’으로 귀결된다. A씨의 횡령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정밀감사를 건너뛰고 두루뭉술 넘어간 것도, 속속 드러나는 숱한 구조적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것도 모두 회원들의 결정이다.

심지어 공선회 15년 역사에서 이 문제들을 처음으로 끌어올린 게 지난해 준회원으로 가입한 C씨인데, 회원들은 최근 정회원 승격심사에서 이 C씨를 ‘발언권 없는 준회원이 발언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제명시켜버렸다. 몇몇 회원들은 C씨를 두둔했지만 다수 회원들이 ‘불편한 존재’로 여긴 것이다.

공선회원 D씨는 “이번 횡령 사건으로 공선회의 운영방식이 많이 투명해질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깜깜이가 돼가는 것 같다. A씨가 살아있다면 경찰고발이라도 해서 정확한 횡령 내용을 밝히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탄식했다.

공선회의 행정과 자금 관리는 세도농협뿐 아니라 어느 곳이라도 농협이 상당부분을 대리하고 있다. 이 애매한 관계 속에서 농민들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공선회라는 자조조직을 건강하게 굴려가기 위해선 더욱 각별한 관심과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오늘날 농협이 조합원 위에 군림하며 비리의 온상이 된 배경엔 조합원들의 무관심이 있으며, 이는 공선회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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