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이 자식같이 키운 벼를 갈아엎게 하는 자 누군가

  • 입력 2022.09.16 11:00
  • 기자명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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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2022년 가을 추석 명절을 맞이하는 농민들의 인사말은 덕담이 아니었다. 농민들에게 이번 추석은 덕담이 오고 가는 명절이 아니었다. 분노에 찬 말들만이 오갔을 뿐이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무엇이든 준비해보자”는 말들뿐이었다.

지난달 29일 전국농민대회를 치렀다. 하지만 농민들의 얘기는 방송에도 잘 다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정부가 내년 예산을 세웠는데 수입하는 쌀에 대해서는 국제 쌀값 인상분과 환율로 인한 상승분이 반영돼 1,220억원의 예산 인상안이 적용됐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주식인 국내산 쌀 관련 예산에는 폭등한 생산비와 인상된 인건비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이에 분노하고 있다. 이미 농촌 곳곳에서 농민들의 이러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어느 지역의 농민들은 벼 적재 투쟁을, 어느 지역의 농민들은 출하거부 투쟁을, 어느 지역의 농민들은 이장단 선언과 1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가 농민들의 어려움을 반영해 주길 아직 바라고 있다. 1년 농사짓고 나면 순소득이 남을 수 있게 예산에 오른 생산비를 반영하고 관련 제도도 개선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농민들은 밥 한 공기(100g) 300원, 쌀 한 가마(80kg) 24만원 보장을 요구한다.

국민 1인당 1년 60kg의 쌀을 먹는다 해도 한 달 쌀값은 1만5,000원, 1년 쌀값은 18만원이다.

지금 밥 한 공기(100g) 가격은 212원이다. 변동직불제(목표가격)가 있었을 때는 쌀값이 떨어져도 목표가격의 85%가 보장됐기에 그나마 쌀 농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익형 직불제 도입·시행 후 농민들이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마지막 안전장치마저 해제됐다.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요구는 생산비가 폭등하기 이전에 농민들이 외쳤던 요구다.

폭등한 농자재값과 인건비, 게다가 이율까지 안 오른 게 없는데 10년 전부터 요구해온 밥 한 공기 300원 보장이 비논리적으로 비춰진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이대로는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래서 농민들은 그 무엇인가를 계속해보려 한다.

지난 15일 모든 지역에서 농민들은 본격적인 투쟁 돌입을 선포했다. 전국적으로 시·군마다 생떼처럼 키우고 가꾼 논을 갈아엎었다.

흔히 말하듯 ‘자식 같은 벼’를 갈아엎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들도 알 것이다.

자식같은 벼를 갈아엎는 농민들의 마음이 슬픔이 되고 눈물이 돼 전국의 들녘을 적실 때 농민들은 다시금 쌀값 보장 구호를 외쳤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는 쌀값 21만원 보장을 농업 공약으로 약속했고 2015년 쌀값이 폭락해 쌀 두 가마 가격이 21만원에 불과했을 때 우리 농민들은 박근혜 퇴진을 걸고 민중총궐기를 제안했고 이를 시행에 부쳤다.

이제 다시 우리 농민들은 2021년산 벼 추가격리와 2022년산 벼 선제적 격리 발표, 목표가격을 포함한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저율관세할당물량(TRQ) 쌀 수입 전면 재협상, 폭등한 생산비 보장 대책 촉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반대 등을 구호로 내걸고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다음 구호가 무엇이 될지는 앞으로 정부의 태도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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