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과일을 즐기기엔 너무 빠른 추석

  • 입력 2022.09.16 10:15
  • 수정 2022.09.16 10:1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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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올해는 음력 8월 15일이 가장 빨리 다가온 해들 가운데 하나였다. 추석이 이렇게 빠를 땐, 물론 머리 속 대부분은 휴일을 즐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만, 잠시 ‘명절 과일이 맛있을까’하는 하나마나한 걱정도 살짝 해본다.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으니, 역시나 접할 수 있었던 과일들은 대개 맛이 없다. 이제 당연한 듯 식감이 예상되는 신고 배는 물론이고, 그 달다는 샤인머스캣조차 껍질색을 보는 순간 이미 ‘이건 틀렸다’ 싶다.

그나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건 이 대목을 중생종으로 대비한다는 공식이 자리잡힌 사과 하나뿐이었다. 홍로의 경우 맛의 측면에선 훨씬 사정이 나았지만, 대신 빠듯한 일정과 기상 영향 탓에 약간의 수급 불안은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사과는 출하에 애쓴 농민들 덕에 가격이 10% 오르는 정도에 그쳤으나 단감이나 각종 제수용 찬에 들어갈 일부 채소들은 시기에 맞춰 출하되는 물량이 너무 적어 ‘없어 못 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정과 수확을 어떻게 하는지 몇 번이나 눈으로 보고 나름의 체험도 했기에 힘들여 농사지은 농민들의 수고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음을 함께 적는다. 현장에선 또 현장대로 종종 해년마다 변하는 명절에 맞춰 숙기를 조절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 대목을 아예 누릴 수조차 없는 데 대한 짙은 아쉬움이 나오곤 한다.

소위 ‘요즘 세대’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은 “왜 꼭 절기를 지켜 추석을 보내야 할까”다. 당장 철저히 유교적 관습을 따르는 내 조부님부터가 펄쩍 뛸 이야기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둥글게 큰 달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 말곤 현대 사회에서 음력으로 추석을 보냈을 때 좋은 점이 하나도 없어서다.

농업계 일각서 세간의 따가운 시선까지 무릅써가며 ‘김영란법’을 고쳐달라고 읍소했을 정도로 명절 시장, 특히 햇과일이 나서는 추석 대목은 농가소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빈번한 이른 추석마다 농민은 농민대로 힘들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다양하고 질 좋은 우리 제철농산물을 즐기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본래 추석의 취지와 달리 오늘날 우리는 이 날 풍요를 즐기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니, 이 땅에서 수천년 동안 많은 명절들이 시대상에 따라 지고 떠올랐던 것처럼 조금의 유연함은 발휘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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