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시집살이④ 서럽지 않은 시집살이는 없었다

  • 입력 2022.09.0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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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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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절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졸병’ 시절을 돌이킬 때면 혹독한 ‘기합(얼차려)’보다, 살을 에는 추위보다, 그리고 배고픔이나 고된 훈련보다…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졸음’을 제일로 참기 힘들더라고 토로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이등병에서 일등병을 지나 상병쯤이 되면 그 ‘닭병(꾸벅꾸벅 조는 병)’이 감쪽같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내가 충주의 한 아파트단지 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들 역시 “시집살이 초년시절에 가장 참기 힘든 것이 졸음이었다”라고 입을 모으는 걸 보니, 역시 옛 시절의 시집살이는 왕년의 군대생활과 빼닮았다.

초저녁, 새 색시 유정윤과 맏동서가 함께 앉아서 바느질을 하는데 시집살이 새내기인 유정윤이 연신 쩍쩍 하품을 한다. 보다 못한 손윗동서가 말한다.

-졸음을 참기가 힘든 모냥인디…그러지 말고 잠시래두 눈을 좀 붙여. 할머니 오시는 기척 나면 내가 큼큼, 기침을 할 것이니께.

-성님, 참말로 그래두 될까유?

“저녁에 빨래 손질하다가 졸기도 하고, 바느질하는 중에 꾸벅꾸벅 졸다가 손가락을 찔린 적도 많고…. 그래도 우리 맏동서는 착한 사람이었어요. 물론 눈을 붙였다가 할머니한테 들키면 된통 지청구를 들었지요. 하지만 할머니는 야단을 쳐놓고 이렇게 타일러요. 느이 시아버지가 한 번 오그라지면 펴질지 모르는 성질머리라, 너를 시아버지 눈밖에 안 나게 하려고 내가 미리 야단을 치는 것이다, 하고….”

유정윤 할머니의 시집살이 얘기가 이 대목에 이르자 경로당에 함께 둘러앉았던 할머니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보탠다.

“에이, 시어미보다 손윗동서 시집살이가 더 매운 법인데, 할머니네 맏동서는 천사였네 뭐.”

“그 집은 시어머니가 실권이 없어서 며느리를 달리 괴롭히지도 않았다면서?”

“시할머니도 그만하면 부처님이지 뭐. 그런 시집살이라면 콧노래 부르면서 하겠네.”

그러면서 제가끔 ‘돌이키기에도 끔찍한’ 호된 시집살이의 경험들을 한숨에 버무려 늘어놓는다. 그러니까 내가 첫 이야기상대로 삼은 유정윤 할머니의 경우, 그 시절의 새댁들이 감내해야 했던 평균적인 시집살이보다 훨씬 편하고 수월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새색시 유정윤을 정말로 맥 빠지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남편이었다. 신부와 열여덟 동갑내기였던 그 신랑은 철이 들려면 아직 먼,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할머니, 우리 각시 아주 못 됐시유. 아까 밥상 내가다가 뚝배기를 하나 깨뜨렸는디유, 얼릉 치워서 뒤란에다 갖다 버리고는 나보고 아무한티두 얘기하지 말라고 그랬시유. 혼내주세유.”

이렇게 일러바치기 일쑤였는데, 그러면 오히려 할머니가 손자를 야단쳤다.

“못난 놈, 지 색시 잘못을 덮어줄 생각은 안하고 사내놈이 어디서 고자질이나 하는 것이여!”

그러고 나서 또 할머니는 철없는 신랑을 이해하라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열여덟 살짜리 신랑이 그랬으니, 당시 조혼바람을 타고 일찌감치 신부를 맞이했던 열두세 살짜리 꼬마신랑들은 오죽했을까.

결혼한 지 5년이 지났다. 철부지였던 남편도 어느 덧 성인이 되어서 군에 입대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때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이었다.

“그 해 정월 초이렛날에 딸을 낳았는데 한 달도 안 된 이월 초사흗날에 입대를 한 거예요. 제주도에서 석 달 훈련 받고 전쟁터로 나갔고…동짓달에 전사 통지서가 날아왔더라고요.”

스물세 살 되던 해에 이른바 ‘전쟁미망인’이 돼버린 것이다. 함께 살 때에도 그녀의 시집살이에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하던 남편이었지만, 막상 혼자가 되고 보니 살아나갈 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집안에 박혀 사는 건 숨이 막혀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장삿길로 나서서 행상을 했어요. 그러다 스물아홉 되던 해에, 결혼에 실패했던 한 남자를 만나서, 시집 눈치 따위 안 보고 재가를 했지요. 그 뒤로는 뭐 그런대로 잘 먹고 잘 살았어요. 내 시집살이 얘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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