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한 사람의 몫

  • 입력 2022.09.04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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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저는 2017년부터 자발적 농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농촌에서의 삶은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말과 소리를 듣게 되는 신기한 일입니다. 특히 농촌사회는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노동과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 어귀 길가의 풀들은 누가 깎는지, 어려운 이웃들은 누가 돌보는지, 곳곳에 쓰레기들은 누가 줍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와 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때마다 자리마다 누군가의 손길들이 닿아 관리되고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자기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마을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몫을 다하기 위해 다들 신경쓰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마을회, 노인회, 청장년회, 부녀회, 4-H, 생활개선회, 지도자회, 새마을회, 방범대, 수난구조대, 의용소방대 등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단체들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의용소방대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볼까 합니다.

2년 전, 옆 마을 보람이 어머니의 추천으로 의용소방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의용소방대가 뭐하는 곳인지 몰라서 알아보니, 산불이 나거나 자연재해가 있을 때, 실종수색이 필요할 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식 소방대원들만으로는 인력이 부족하거나 시간이 촉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을 훈련하여 민간인 소방대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단체라고 했습니다. 평소 안전이나 응급상황 대처 등에 관심이 있던 터라 너무 반가웠고,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대피훈련이나 응급구조의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고 들어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만 해도 가까운 병원이 1시간 거리에 있고, 구급차가 오기까지 30여분이 걸리는 곳입니다. 가입 첫해에 서울까지 가서 전문교육을 받고 오니 농촌지역에서는 위기대응능력이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12월 말에는 옆 마을에서 실종자 수색이 있어 출동했다가, 실종자를 찾아서 집으로 귀가하던 길에 빙판길에서 오토바이가 넘어져 다치신 70대 어르신을 만나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은 동창의 삼촌이었고, 어르신의 부인은 아직도 그날 저희를 만난 얘기를 하시면서 고맙다고 하신다고 합니다.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해서 의용소방대원들이 방호복을 입고 인근 공공시설을 소독하는 방역활동도 하고, 산과 인접한 민가에서 불이 나 소방호스를 붙잡기도 하고, 실종자 수색을 위해 산을 타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의용소방대원들 중에서도 요양이나 돌봄 관련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주변의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하여 시설점검을 하기도 하고, 생활안전을 확인하고 말벗이 되어드리기도 하는 돌봄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의용소방대의 역할이 정해져 있어서 출동할 때만 의용소방대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 구성원으로서 우리 마을에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이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성원이 되는 것, 이게 제가 생각하는 의용소방대원입니다.

한 달 전쯤 의용소방대 정기교육이 끝난 뒤 다른 대원 한 명과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우연히 퇴직소방청 공무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굉장히 반가워하시면서 10여분 정도 소방공무원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자랑하시더니, 약주를 드시고 취기가 오른 뒤부터는 저희가 입고 있던 의용소방대 유니폼과 모자에 대해 지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복은 정식 공무원만 입을 수 있는 건데 민간 의용소방대가 제복을 입는 것은 불법이라고 의용소방대는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정식 공무원이면 어떻고, 민간이면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 한 명이라도 더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요? 사실 우리 마을 의용소방대는 인원이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이 소멸될지도 모르는 농촌에서 농사짓고 일하기만도 바쁜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위해 시간을 내어 교육을 받고 훈련해서 산으로 강으로 위험한 곳도 찾아다니며 구조활동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아쉬운 마음에 이 글을 써봅니다. 전국에 계신 의용소방대원님, 농촌에서 제 몫을 하며 주변을 살피고 돌보는 저와 여러분이 저는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도 교육도 더 잘 받고, 훈련도 열심히 해서 언제 어디서든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만나면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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