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호미를 들 힘만 있어도

  • 입력 2022.09.04 18:00
  • 기자명 김승애(전남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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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애(전남 담양)
김승애(전남 담양)

요즘 전국의 농촌마을 여기저기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교육이 한창이다. 이 교육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주최하고 각 지역의 여성농민회나 여성농업인센터가 주관하고 있다. 연수를 받은 여성농민들이 직접 마을의 여성농민들을 찾아가서 여성농민들의 힘을 모아 만든 정책을 소개하고 설명하고, 그 외 지자체와 농협의 여성농민 관련 정책을 소개한다. 그리고 누구나 쉽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가벼운 운동을 같이 해보고, 여성농민을 위한 소농기계, 소농기구들을 직접 보여주며 시연을 해보기도 한다.

그동안의 영농교육은 작물의 생육이나 병충해 방지, 새로운 농기계가 나왔을 때 기계 작업 기술을 익히는 교육들이었다. 정책설명이나 의견수렴도 면 단위로 행해지다 보니 주로 남성농업인이나 활동력 있는 농민들이 참여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정부정책이나 사업을 마을까지 직접 찾아가서 설명해주는 교육은 없었던 것 같다. 또한 교육 내용에서도 정책이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온 과정도 자세히 설명드리니 더 좋아하셨다. 특히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의 대부분은 여성농민들이 제안했고, 제안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이 되기까지 노력하여 모든 여성농민에게 혜택이 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시기도 하고, 자랑스러워하시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정책에 애정어린 조언도 해주신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행복바우처 카드이다.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제도는 충북에서 2012년 처음 시작한 이후 전국 광역시·도로 확대되어 왔다. 처음엔 여성농업인의 열악한 문화생활을 위한 정책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얼마 안되었고, 자부담을 포함하거나 지원금이 적거나 수령의 절차가 쉽지 않거나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의견이 수렴되고 반영되어서 지원금도 점차 늘어나고 자부담을 없앤 광역자치단체도 있다. 카드 수령 시 처음에는 시·군의 중심지에 있는 농협 군지부를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지금은 읍·면 농협에서 받을 수 있고 착한 농협은 마을회관마다 찾아가서 배포하기도 한다.

이렇게 발전을 해왔음에도 아쉬움이 많은 정책이다. 여성농업인이지만 다른 직장에서 월 60시간 이상(주당 15시간) 일하거나 4대보험에 가입한 여성은 제외된다. 별 수입이 없는 농한기에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는데 수입이 열악한 농촌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그리고 대상자 연령이 75세까지로 되어 있는데 이 또한 농촌의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이다. 밭농사 작업에서 외국인노동자를 구하지 못할 때, 또는 반나절 일거리일 때는 마을 여성농민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 등장하는 우리 여성농민들의 평균나이는 80세이다. 얼마전 고추따기 작업을 할 때 모시고 온 팀에도 92세 여성농민이 계셨다. 우리 동네는 딸기농사가 많은데 꽃작업을 도와주시는 노련한 손놀림의 프로 여성농민들 대부분은 80세 전후이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이며 75세 이상이어도 열일하는 여성농민이 많다. 그런데 정책에서는 75세를 넘으면 배제된다는 현실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여성농민으로 인정받고 문화혜택을 보는 것은 농촌에 또다른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전남여성농민대회 때 고송자 회장님이 주장하셨다. “호미를 들 수 있는 여성농민에게 모두 행복바우처카드를 지급하자!”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요즘 시대에 물리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무엇이든 도전하라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도 만 79세이다. 그런데 우리 농촌에서 농업을 이어주고 계시는 고령의 여성농민들을 여성농민 정책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불공정한 것 아닐까. 바우처카드는 여성농민으로 인정받고 대우받는 바로미터이기에 예산의 문제를 들먹이며 탁상행정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농촌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정책’으로 생각하고 물리적 나이제한이 아닌 호미를 들 수 있는 모든 여성농민에게 지급하기를 바란다. 농촌을 유지하는 가장 큰 주체인 여성농민을 위해 여성농업인 바우처카드 확대뿐 아니라 여성농업인 모두를 위한 정책이 쏟아져 나오길 바란다. 여성농민이 없는 농촌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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