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가을을 맞는 걱정

  • 입력 2022.09.04 18:00
  • 기자명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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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심하다. 공약들은 어찌하고,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표를 요청하던 선거 때와 사뭇 다르다.

필자는 1990년부터 농사를 지었다. 어느 농사였건 작기를 시작할 때면 늘 희망을 가졌다. 직장인의 호봉이 해마다 올라가고 숙련되는 만큼 노동의 대가를 조금씩 더 받으리라 기대를 갖듯 농사짓는 나도 그러했다. 농업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특히 농산물 시세의 흐름을 읽으며 엽채류, 과채류, 근채류와 곡물류의 순서로 가격 변동폭이 빨리 움직이는 것을 확실히 익혔다.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느 시기에 어떤 작물을 심을 것인가는 늘 고민이고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특정 작물에 전문성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1년에 한 번 수입이 채워지는 과수와 곡물 농사를 기본으로 하면서 자주 푼돈도 아쉬운 농민에게는 어떤 종류의 엽채류, 과채류로 돈을 만들어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늘 가격과 작황의 흐름을 살피고 고민했다. 작황도 중요하지만 가격의 흐름을 거슬러 가격이 폭락한 경험을 몇 번 가져 낭패를 보았던 적이 있던 지라 늘 조심스러웠다. 농사를 지으며 정부가 예고한 집계는 맞는 경우보다는 틀린 경우가 훨씬 많아서 작목의 선택과 재배 시기 등은 정부 통계를 참고하되, 현장에서 익힌 감에 의존해 작목과 시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노지의 엽채와 과채의 가격 등락이 심한 것은 일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근채류까지도 이해가 갔고, 정부의 곡물류 생산량과 가격 예고는 나름 안정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개인적으론 1992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쌀 생산에 따른 책임을 지역농협으로 떠넘기기 위한 오랜 계획을 시작했다고 본다. 쌀의 상당량을 나눠 매입했던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작당해 농민들이 오랫동안 줄기차게 폐지를 요구한 수세를 줄여가며 결국 폐지시키는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지역농협을 중심으로 보조금을 투입해 미곡종합처리장(RPC)를 짓도록 유도했다. 보조금을 주면서 차별 경쟁을 시키니 지역농협들은 경쟁하듯 RPC를 지었다. 여기에는 민간 영농조합법인도 상당수가 참여했고 뒤이어 건조 보관시설인 DSC도 상당히 짓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는 공기업이었던, 비료공장으로 잘 알려진 남해화학을 농협중앙회에 매각했다. 매각대금을 직접 지불하지 않고 정부가 양곡 부문의 특별회계 중 농협중앙회로부터 차입한 8.000억원 이상의 양특회계 적자 금액을 털어버리는 방식으로 정리를 했다.

그리고 정부는 수매제도를 폐지하고 공공비축미 제도를 도입하면서 농민들의 상당한 저항에도 사실상 쌀 시장을 개방해 오늘의 이 지경에 이르도록 했다. 정부가 예측하던 것보다는 농촌·농민이 빨리 소멸해주지 않아 정부와 정부의 논리에 힘을 보탰던 관료와 학자들이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농촌에는 많은 농민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열심히 일했는데도 매우 힘든 지경에 이르러 가을 수확기를 맞고 있다.

정부는 우리 농산물 중에서 가격의 등락폭이 가장 느린 쌀에서 손을 떼버리는 길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리고 농민들은 일시적으로 시장에서 격리하는 공공비축미의 가격보다는 격리곡과 비축미의 양에 관심을 가지고 정부에 공공비축량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공공비축미와 자가 소비량을 제외한 쌀을 처분해야 하는 농민들은 공공비축미보다 훨씬 많은 양의 벼를 사들이는 지역농협에 대한 쌀값 인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정부는 늘 한발 물러선 상태였다.

지역농협을 향한 농민들의 요구가 늘어났지만 정부는 양곡 관리 부분의 상당한 업무를 지역농협에 넘기고 선거를 치를 때만 농민을 챙기는 듯한 행위를 반복했는데 이 모든 게 지금 이 지경, 수확기를 앞둔 시점에의 쌀값 폭락에 이르도록 방치한 것이다.

지금 예측이 틀어진 쌀 생산·소비 상황과 강요된 쌀 수입 상황에서 농민들은 소득원 중 그 규모가 상당하기도 하지만 가장 믿음이 컸던 쌀농사가 구조적으로 심각히 흔들리고 있는 수준을 넘어 붕괴될 수 있다고까지 예측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계략에 걸려 RPC를 운영하던 지역농협들도 RPC 설립 초기 몇 년을 제외하고는 농협의 존립을 흔드는 상황에 도래한 꼴이 됐다.

지금 상황을 보자면 늘 농민들의 기대치에 미치진 못했어도 가장 안정적인 면을 유지하던 먹거리의 기본인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유례없는 절망을 경험할 것으로 보이고, 농협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사업 흑자가 예상됨에도 RPC를 운영하는 경우 쌀값 폭락으로 적자가 심해 올해 결산이 가능할지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약속과 공약들을 너무 어기고 있다. 선거할 때, 표 달라고 할 때 이런 내용은 없었지 않나. 참 심각하다. 만물가가 올라가니 쌀이라도 두드려 잡자는 게 이번 정부의 농정 핵심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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