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친환경 쌀

  • 입력 2022.09.02 11:4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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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유례없는 쌀값 폭락 국면에서 친환경 쌀 또한 구곡 재고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북 정읍의 일반정미소에서 한 농민이 친환경 쌀을 지게차로 이동시키고 있다. 한승호 기자
유례없는 쌀값 폭락 국면에서 친환경 쌀 또한 구곡 재고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북 정읍의 일반정미소에서 한 농민이 친환경 쌀을 지게차로 이동시키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반적인 쌀값 폭락 국면에서 친환경 벼도 가격보장 및 판로 확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미 지역별로 일반 쌀 뿐 아니라 친환경 쌀 재고량도 넘치고 있다. 현재 한국친환경농업협회(회장 강용, 친농협)와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위원장 주형로)는 전국 각지의 친환경 벼·쌀 재고량을 파악 중인데, 지난달 31일 현재 경기·경남·경북·충북의 벼 재고량은 약 6,247톤에 달했다.

친환경 쌀 최대 생산지인 전남의 경우 아직 자료 수집이 진행 중이나, 현재까지 파악된 벼 재고량만 해도 약 2만8,000톤에 달하며, 역시 자료 수집 진행 중인 전북은 현재까지 약 1,549톤의 재고량이 파악됐다. 충남과 강원도 등 일부 지역 재고량을 합치지 않았음에도 무려 3만6,000톤 이상의 친환경 벼가 남은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재고량이 많음에도 판로가 없다고 호소하는 지역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일례로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의 경우 각각 150톤의 친환경 벼가 남아 있으나 그 어디에도 판로가 없다는 게 지역민들의 설명이다. 김창민 정읍시 학교급식지원센터장은 “예년 같으면 8월말~9월초에 정읍 관내 또는 전주·남원 등의 학교로 친환경 쌀이 공급될 여지가 있었으나, 올해는 어느 곳에도 소비처가 없다. 40kg당 1만원씩 손해 보고 팔려 해도 팔 곳이 없다. 정읍뿐 아니라 전북 전반적으로 쌀 재고량이 많으니, 각 학교들도 다른 곳의 재고 쌀을 먼저 받게 돼서 그런 것”이라며 “지난해 정읍 친환경 벼는 나락 40kg당 7만7,000원씩 학교에서 수매됐는데, 올해는 6만3,000원으로 팔려 해도 어디서도 안 가져가는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햅쌀까지 시장에 풀리면 가격 폭락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경남 산청군의 경우 관내 친환경 벼 재고량이 약 660톤으로 파악됐다. 산청에서 친환경 벼를 재배하는 김홍대 오부친환경영농조합(오부친환경) 대표는 “오부친환경의 경우 약 100톤의 재고량이 있는데, 그중 30~40톤은 일단 직거래로 (판로문제를) 해소할 계획이나 나머지는 ‘땡처리’하지 않으면 판로를 찾을 길이 없다”면서 “10kg당 2만5,000원씩 ‘땡처리’하려는데, 사실 생산비를 최소한도로 보전하려면 3만원, 예년 수준으로 보장받으려면 3만5,000원은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일단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일 공공비축미 45만톤 매입계획을 발표했는데, 해당 계획엔 친환경 벼 7,000톤을 일반벼 특등가격으로 매입해 공공비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전남도만 해도 친환경 벼 재고량이 2만8,000톤에 달하는 데다, 공공비축미 매입을 특정 지역에서만 몰아서 할 수 없고 지역마다 균형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큰 대책은 아니라는 게 친환경농업계의 입장이다.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전북 남원에서 친환경 벼농사를 짓는 박종구 씨는 △학교급식 이외 공공급식 영역의 친환경급식 확대 △현재 ‘일반벼 특등가격’ 수준인 친환경 벼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을 ‘별도의 친환경 벼 매입 가격’으로 현실화 △대대적인 시장격리 조치 강화 △소비촉진 강화 등의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친환경 벼농가들은 큰 위기에 봉착하리라고 진단했다. 특히 공공비축미 매입가격과 관련해 박씨는 “친환경 벼 수확량이 일반 벼보다 적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행 일반벼 특등가격 수준인 매입가격은 사실상 일반벼와 차별화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소비촉진과 관련해, 한살림연합(상임대표 조완석)에선 전 조합원 및 실무자, 생산자들의 ‘쌀 책임소비’를 결의했다. 아직 책임소비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논의 중이나, 어떻게든 친환경 쌀 적체 문제를 해결하고자 생산자·소비자가 힘을 합쳐 노력하는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부도 어떻게든 ‘책임’을 강화하고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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