햅쌀 수확 시작했는데 … “팔 곳도 보관할 곳도 없어”

가을걷이 앞둔 현장 가보니

  • 입력 2022.09.02 11:00
  • 수정 2022.09.04 21:03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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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지난달 31일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후동리에서 권성진 홍천군농민회 사무국장이 수확을 하루 앞둔 벼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31일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후동리에서 권성진 홍천군농민회 사무국장이 수확을 하루 앞둔 벼를 살펴보고 있다.

 

수확해도 팔 곳 없어 ‘막막’

지난달 31일 찾아간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후동리의 한 농기계 창고에서 만난 권성진 홍천군농민회 사무국장(49)은 전화통화에 여념이 없었다. 햅쌀을 수확했는데, 판매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판매처를 알아봐 달라는 지인의 부탁 때문이다.

4만평 규모로 쌀농사를 짓는 권성진 사무국장은 “작년 이맘때 벼 40kg 가격이 8만5,0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7만원에 판다고 해도 사질 않는다”며 “햅쌀은 수확량도 적고 오래 보관할 수도 없어서 추석 전에 빨리 소진해야 하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강원도 홍천 농민들은 그동안 판로를 걱정하지는 않았는데, 작년부터 팔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거래 자체가 정지된 상태다”라고 우려했다.

홍천군 화촌면에서 5,000평 규모의 쌀농사를 짓는 한상기(64)씨는 “작년에 쌀을 수매하던 곳들도 아직 그때 사놓은 쌀이 쌓여있어서 햇벼를 살 엄두를 못 내는 것 같다”며 “아예 가격 얘기 자체를 안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년 가격만이라도 받으면 좋겠다 싶은데, 지금 어떻게 팔아야 할지조차 암담하다”고 탄식했다.

떨어지는 쌀값과 달리 비료값, 농약값, 자재비, 인건비 등 농작업에 필요한 비용은 계속 올라 고스란히 농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권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그는 “작년 이맘때 비료값이 1만원 정도였는데, 2만3,000~2만4,000원으로 올랐고, 농작업에 쓰는 경유는 리터당 1,200원 하던 게 1,900원까지 올랐다. 석유도 600원 하던 게 지금은 1,600원이고 인건비도 하루 8만원에서 12만원으로 올랐는데, 쌀값만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 올 수확기 수매 난항

지역농협은 사일로(쌀 창고)에 쌓인 구곡을 처리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민들이 올가을 수확하는 쌀을 수매하려면 창고에 쌓여있는 2021년산 쌀을 처리해야 하는데, 헐값에 넘기려 해도 판매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천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지난해 수확한 벼 173톤이 창고에 쌓여있다. 이승준 홍천농협 미곡종합처리장 과장은 “추석이 지나고 햅쌀이 나오면 하나로마트나 일반 마트에서도 햅쌀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곡은 팔 곳이 없다”며 “햅쌀이 나오기 전에 구곡을 다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작년 수매가격의 절반으로 판매를 하려 해도 소비가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방앗간 같은 곳에도 최대한 가격에 맞춰줄 테니 사달라고 사정사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벼 건조저장시설(DSC)을 갖춘 서홍천농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주현 서홍천농협 판매과장은 “아직 벼 400톤이 쌓여있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양 외에도 300톤 이상의 재고가 이월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신곡을 수매하려면 기존 구곡을 9월 말까지 다 팔아야 하는데, 이미 시장가격이 다 무너져서 수매 당시 가격보다 40kg 기준 2만원 이상 낮춰도 팔리지 않아 애로가 많다”고 말했다.

농협에 따르면 정부의 3차례 시장격리에도 전국 농협 창고에는 지난 7월 말 기준 쌀 41만톤이 쌓여있다. 이는 전년 동기 24만톤 대비 17만톤(73%) 많은 수준이다.

“늦장 격리·최저가입찰 방식이 문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20㎏ 산지 쌀값은 4만1,836원으로 전년 같은 날 5만5,333원보다 24.4% 하락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45년 만의 최대 폭 하락이다.

정부는 쌀값이 계속 떨어지자 지난 2월부터 3차례에 걸쳐 2021년산 쌀 37만톤이 시장에 유입되지 않도록 격리하는 조치를 시행했지만, 하락세를 막진 못했다. 이에 농민들은 지난해 수확기 이후 쌀값 하락세가 명확했음에도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가 시기적으로 늦었고, 쌀 수매가격을 최저가 입찰 방식인 역공매로 결정해 가격이 폭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수확기 당시 시장격리 여부를 결정하기에 불확실한 요소가 많았다는 주장이다. 전한영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지난달 17일 ‘쌀값 폭락, 쌀 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시장격리 발표가 늦어진 것이) 현재 쌀값 폭락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 건 분명히 맞다”면서도 “지난해의 경우 생산량이 늘었음에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수확 직전 전북 신동진 벼에 도열병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돼 격리물량 발표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쌀 자동시장격리 의무화’를 위한 법 개정에 나서고 있지만, 전한영 식량정책관은 “자동격리를 의무화할 경우 예측 불가한 이상기후 등의 돌발상황에 대응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크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부, 공공비축 쌀 45만톤 매입 ... 농민 “시장 반응 안 할 것”

한편 농식품부는 지난 1일 2022년산 공공비축 쌀 45만톤을 8월 3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보다 공공비축 쌀 10만톤을 추가로 매입하고 매입 시기를 보름가량 앞당겨 2022년산 쌀 10만톤을 조기에 시장격리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그동안 매년 35만톤 수준으로 매입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실제 쌀값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김정룡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2020년 흉년으로 당시 쌀을 대거 방출해서 비축미 재고가 없는 상태다”라며 “그런 차원에서 10만톤 추가 매입은 예전부터 계획이 있던 거다. 지역 유통업자들도 이런 내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 물량 가지고는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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