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자력갱생’ 농민들, 스스로 수십억 수출판로 뚫다

8년 노력 거쳐 배·딸기·단감 단독 수출하는 경남 진주 파머스팜

  • 입력 2022.09.04 18:00
  • 수정 2022.09.04 21:0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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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장수지 기자]

김건수 파머스팜 대표(왼쪽)와 이곳 딸기생산자 전주환씨가 파머스팜 공동작업장을 배경으로 웃음짓고 있다.

 

우리나라가 맺은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의 협정문에 최종 서명을 한 이래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 최초의 서명 이후 거듭된 개방 확대는 먹거리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비자들은 열대과일 등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받았지만, 필연적으로 시장 점유율 감소를 맞닥뜨릴 국내 생산 농가들은 농가소득 감소라는 직접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품목에 따라선 막대한 피해를 피할 수 없었던 과수농가들의 경우, 국산 과일의 특징과 강점을 이용해 오히려 수출을 통해 손실을 만회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FTA 시대 20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과수 시장을 중심으로 우리의 수출 현황을 살펴보고, 생산현장의 모습과 농가의 목소리를 통해 앞으로의 가능성과 대응의 주문을 담아본다.

 

파머스팜 생산자들의 신념이자 경영철학을 단 한 단어로 함축한다면 ‘자력갱생’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놀랄 만한 수출 실적을 오직 농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냈기 때문이다. 지금껏 정부의 시설 보조사업 등 정책자금엔 일절 눈을 돌리지 않았고, 대표를 비롯해 임원을 맡은 농가들은 따로 보수를 받지 않았다. 대신해 핵심으로 세운 생존전략이 바로 유통마진의 ‘제로화’였다.

다른 농단(수출농업단지)과 달리 파머스팜은 수출·유통업체나 지역 원예농협을 사이에 두지 않고 생산을 넘어 선별·포장 등 유통은 물론 해외 영업까지 모두 자력으로 감당하고 있다. 이를 주도한 이가 바로 김건수 대표로, 이 길만이 농업을 지속할 길이라 믿고 8년 전 뜻 있는 진주의 배 농가 여섯 곳과 함께 자금을 출자,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엔 각자 지역농협 소속으로 수출물량을 댔어요. 근데 가만히 보니까 이거는 수출업체랑 농협 먹여 살리는 꼴인 거야. 나는 이걸 분명 2만원에 팔았는데 현지 마트에 가보니 구매가격이 4만원이 돼 있어요. 마트 사장을 바로 만나서 말했죠. ‘이거 3만원에 줄게. 할래, 안 할래?’ 그게 바로 시작이었죠.”

그렇게 지금은 호주, 홍콩, 캐나다, 필리핀 등 총 9개국 11개 업체와 배, 단감, 딸기 등을 거래한다. 2020년에는 신선농산물 수출액이 250만달러(약 34억원)를 기록해 김 대표가 ‘동탑산업훈장’을 수여 받기까지 했다.

이 같은 성과를 위해 김건수 대표를 비롯한 파머스팜의 주요 임원들은 지금까지도 일반적인 농업경영체나 작목반 수준에서 과연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 정도의 노력을 지속한다. 김 대표는 매년 직접 해외로 나가 전 세계의 농업·식품 관련 박람회나 판매행사를 찾아 파머스팜의 판로를 찾고, 또 경쟁국가의 농민들이 올해는 어떤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한다. 배 농사를 짓는 김 대표는 올해도 명절 대목 이후 10월 15일 개최되는 파리 식품박람회를 필두로 해외 방문일정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법인의 단둘인 상근 직원 중 한 명으로 아버지를 돕는 딸 김보경 대리도 오늘부터 사흘간 열리는 호주 식품박람회를 나간다.

 

파머스팜 공동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명절용 배를 선별하고 있다.

 

유통마진 ‘제로화’로 활로를 뚫다

모두 이곳에 납품하는 60여 농가들의 농산물을 하나라도 더 국제 시장에 팔기 위함인데, 김 대표는 이런 ‘큰일’뿐만 아니라 배 포장박스를 접는 일까지도 여전히 임원들이 거들고 있다며 닳고 색이 바랜 엄지·검지손가락을 내보였다. 여기에 철저한 인력관리까지 더해져 이곳에 납품하는 농가는 선별포장비를 훨씬 적게 부담할 수 있다. 파머스팜을 통해 딸기를 내는 농민 전주환씨는 파머스팜이 비록 농업회사법인이지만, 실제론 회사의 이익이 아닌 농가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영농조합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농업회사법인이 된 이유는 직접 수출의 용이성 단 하나 때문이라고.

“농협이나 다른 데 선별·포장하는 곳 한 번 가보세요. 대부분 ‘헐렁’이에요. 자신들이 월급 주는 거 아니고 농민이 받을 돈에서 떼 인건비를 주니까 크게 감독이 안 돼요. 우리는 일할 땐 확실하게, 대신 깨끗하고 조용한 근무 환경을 제공해요. 바이어들이 선별 포장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는 순수 농민들이 구성한 자본금을 갖고 시작해 필요한 경비만 갹출하며 운영하니, 실제로는 작목반이나 협동조합에 가깝죠. 하지만 우리는 수출이 목적이니까, 협동조합(한국배영농조합법인)의 형태로도 한계가 있었어요. 수출 오더도 만들어야 하고, 외환 거래도 해야 하니 형태는 결국 회사법인이 된 거지요.”

파머스팜의 딸기 생산자 대표라 할 수 있는 전씨는 친환경 딸기를 재배하는데, 얼마 전 진주에서 처음으로 호주에 수출된 딸기가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대표적인 딸기 생산국 가운데 하나인 호주는 딸기병해충 ‘벗초파리’ 유입 우려를 들어 지난 2018년을 마지막으로 한국산 딸기 수입을 중단했다.

“친환경으로 키우라 하면서도 움직이는 벌레는 나오면 안 되는 게 호주 기준이에요. 이것 때문에 어느 농단도 수출을 다시 못하고 있다가 작년에 우리가 열었죠. 열긴 열었지만 3월이 넘어가면 우리도 불안해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는 5월 말까지 딸기가 들어가지만, 호주에는 2월까지만 나가기로 했어요. 항공 운송료부터가 엄청난데 돈도 돈이지만, 신의의 문제도 있으니까요.”

전씨의 친환경 딸기를 비롯해 이곳에 납품하는 농가들의 물건은 수출국의 요구를 철저히 따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딸기는 경도와 당도를 최우선으로, 배 역시 국내에 주로 유통되는 신고 등의 대과보다는 당도와 식감을 우선으로 한 소과 품종을 위주로 기른다. 수출용 생산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명시하는 법인 자체교육도 시행한다. GAP는 기본, 여기에 식품안전경영에 관한 국제표준 ‘ISO 22000’은 물론이고 중동 지역 판로 확보를 위해 할랄품질인증까지 받은 상태다.

 

“국제 시장에서 통하는 맛과 질 중요”

직접 유통에 따른 높은 수출 실적과 판매단가에 솔깃해 찾아오는 농가들이 매년 제법 수를 이루지만, 김 대표는 ‘지켜야 할 것’을 듣고 나면 이를 감당할 수 있겠다고 나서는 농가가 생각외로 많지 않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해외 시장에서 본, 거의 예술품에 가까운 수준의 외관을 자랑하는 일본산 딸기의 사진을 보여준다.

“지금 국제 시장에서는 이 정도의 딸기가 최고급품으로 팔리는데, 우리 딸기는 아직 조금 부족합니다. 하지만 우리 것도 굉장히 익었죠?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보통의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여기 와서는 힘들어요. 우리에겐 국제 시장에서도 통하는 맛과 질이 중요한데 그것이 안 되는 물건을 보내면 바로 옆의 농가와 우리 법인, 나아가서는 K-푸드 시장 자체가 피해를 보는 거에요.”

“대표님도 그렇고 우리 농가들도 그렇고, 우리가 회사의 ‘이윤’을 위해 이걸 하는 게 아니잖아요? 설령 농가는 (늙어) 없어져도 이 회사는 수출창구로서 앞으로 계속 존재해야 해요. 기준을 따르지 않으려는 농가들이 계속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면서 분위기를 흔들어버리면 여기 있는 농단 전체가, 나머지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손해를 떠안게 되는 구조에요.”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르다 보니, 자연히 생기는 또 다른 장점도 있다. 참여 농가의 농사 규모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아 불과 800평의 과수원에서 나온 배를 납품하는 농가도 있는데, 이런 농가에는 으레 복합영농을 추구하는 소농들이 있다. 자연스레 상품 다양화에 있어 확장성이 높아, 본래 배 농가 위주로 시작했지만 쉽게 주력 상품을 늘릴 수 있었다. 일종의 로컬푸드적 성격을 갖고 수출시장에 접근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가락시장과 동네 생협 매장의 차이점을 예로 들어 이를 확인한 기자의 질문에 김 대표는 매우 동의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강점이 있다면, 막말로 ‘숟가락 하나 더 얹기’가 굉장히 쉽다는 거죠. 예를 들어 기자님이 인도네시아에서 마트를 하는데 한국 물건을 가져오고 싶어요. 무역업체 통해서 하려면 뭐 달라, 뭐 있냐 복잡한데 우리는 복합영농 기반이니까 농가들이 생각지도 못한 걸 전부 하고 있거든. 딸기 있지, 배 있지, 단감 있지. 이번에 만난 호치민의 한 바이어는 이런 점 때문에 최근에 우리로 거래 선을 바꾸기도 했어요.”

 

 

생산비 상승·선적 문제로 어려움 겪어

다만 요즘은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끝을 모르고 상승하는 농업생산비 때문에, 전씨만 해도 지난해까지 하우스 11동에서 딸기를 길렀지만 올해는 인건비 문제로 6동분의 모종만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생산비뿐만이 아니다. 당장 이날도 김보경 대리는 중국선적 화물선의 부산 입항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급히 다른 배를 구하느라 곤혹스러워했다. 한진해운 부도 이후 국적선사의 수송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글로벌 선사들이 국내항 입항을 꺼리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선적 자체가 종종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비용의 증가를 부른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 2015년 각료회의에서 정한 바에 따라 모든 국가가 농산물 수출에 물류비를 지원할 수 없게 된 건 더욱 어쩔 수가 없는 악재다. 우리나라 역시 단계적 감축을 거쳐 2024년부터는 물류비 지원을 중단할 예정인데, 정부는 이 예산으로 품목별 통합수출조직을 지원할 계획을 내보이고 있으나 파머스팜과 같은 단독 법인은 정책 수혜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진주시가 농산물유통과 농산물수출팀을 두고 시설 현대화 지원사업, 작물보호제 지원사업, 수출농산물 자조금 운영 등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점점 무너지고 있는 가격경쟁력 회복에 크게 도움은 안 되는 실정이다.

예정된 난관에도 불구하고 파머스팜의 농민들은 기존의 관행 농사처럼 대량생산을 해서 억지로 한 번 크게 팔고 말 것이 아닌, 지속가능한 농사로 가치를 창출하면서 농민으로서의 자긍심도 챙기는 농업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 다짐했다. 이 놀라운 자력갱생의 모형이 우리 농업의 미래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작지원: 2022년 FTA이행지원 교육홍보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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