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시집살이③ 우물물은 두레박으로 긷고 눈물은…

  • 입력 2022.08.28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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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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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시집살이하는 며느리들에게 가장 힘든 노역은 빨래였다. 집안에 우물이 있는 경우야 그래도 고생이 덜한 편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빨랫감을 가지고 마을 공동 우물이나 냇가로 나가야 했다. 열여덟 살에 괴산에서 진천으로 시집 간 새댁 유정윤의 시집에는 다행히 앞마당에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에서 유정윤이 맏동서와 함께 빨래를 한다.

-뭣 하고 있어. 물 다 길었으면 두레박 내려놓고 빨래 헹궈야지. 할아버님 두루마기하고 아버님 저고리부터 먼저 헹궈서 빨리빨리 내다 널자구.

-아이고, 손 시려라. 성님, 손이 기냥 얼어서 깨지는 것 같구먼유.

-깨지기만 해서 되남? 깨지고 벳게지고, 거그 다시 새살이 돋아서 또 갈러지고 하는 것이 여편네들 손이라네. 얼릉 빨아서 볕 날 때 말렸다가, 잿물에 삶아서 다시 널고, 풀 멕여서 다듬이질도 해야 하고, 때 되면 빨래하는 틈틈이 부엌에 들어가 식구들 밥도 채려야 하고….

-예, 성님. 알었구먼유.

“열두 식구가 옷을 한 가지씩만 벗어놔도 빨래가 산더미지요. 비누가 없으니까 잿물을 받쳐가지고 빨았는데 옷에 밴 얼룩이 아무리 빨아도 잘 안 져요. 우물까지 깊어서 두레박질하기도 힘들고…. 겨울철에는 물을 긷고 나서 잠깐 있다 보면 두레박 밑바닥이 어느새 얼어붙어 있어요. 옛날엔 고무장갑도 없었잖아요. 손이 시려서 정 못 참겠다 싶으면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서 언 손을 잠깐씩 녹인 다음에 다시 나와서…아이고, 그 시절 얘기하려니 눈물이 다 나네.”

1927년생 유정윤 할머니가 열여덟 새색시 시절 빨래하던 얘기를 하다말고는, 고개를 젖혀 마을회관의 천장을 쳐다본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당시의 옷감들이 대개 흰색 천이어서 때가 쉽게 탈 뿐만 아니라, 비누가 없었으므로 잿물을 만들어 삶아 빨아야 했다. 열두 식구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매일이다시피 빨아야 했으니 그 고충이 오죽했겠는가. 빨래가 한창인데 함께 옷을 빨던 맏동서의 남편, 즉 시아주버니가 우물가에 나타난다.

-어흠, 빨래들 하는구먼. 어이, 임자!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으니께, 빨래는 제수한테 맽기고 방으로 조깐 들어와야 쓰겄구먼.

-시방 빨래가 밀렸는디…뭔 얘기를 할라고 그런대유?

-아, 빨랫방맹이 내려놓고 후딱 안 따러오고 뭣하는 것이여!

-성님, 얼른 가보셔유. 지가 할 게유.

새색시 유정윤의 손윗동서는 시아주버니의 두 번째 부인이었는데, 시숙 되는 사람은 재취로 얻은 젊은 부인이 고생하는 것을 눈에 띄게 못 참아 했다. 그렇잖아도 서툴고 고된 시집살이에 힘겨워하던 나이 어린 유정윤에게는, 심히 부럽고도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혼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이번엔 시할머니의 행차시다.

-빨리 하고 방아 찧으러 가야 하는디, 물빨래를 아직까지 하고 있으면 어쩔 것이여! 아니, 그란디, 우리 집 큰 며느리는 빨래하다 말고 어디를 간 것이여?

-아, 저, 저기…잠깐 급한 볼일이 있어서유.

-쯧쯧쯧, 또 즈이 신랑이 아랫목에 묻어둘라고 데리고 갔구먼.

-할머니, 그, 그것이 아니고….

-아니긴 뭣이 아니여? 살림 물정 모르는 어린 것한테 다 맽겨두고…에이, 쯧쯧쯧….

그 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난다. 새색시 유정윤이 방망이를 내려놓고 울음을 터트린다.

-울지 말거라. 머슴살이하고 시집살이는 다 지 하기에 달렸느니라. 너 착한 맘, 이 시할미가 다 안다니께 그래.

“시어머니도 역시 재취로 들어왔기 때문에 말하자면 실권이 없었어요. 그래서 집안 살림을 시할머니가 이래라 저래라 호령을 했거든요.”

하지만 비록 시아주버니 되는 이가 아내인 맏동서를 눈에 띄게 두둔해서 새색시 유정윤을 더러 서럽게 하긴 했지만, 동서 사이는 나쁜 편이 아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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