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협동조합의 비상을 꿈꾸며

  • 입력 2022.08.28 18:00
  • 기자명 이한보름(경북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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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보름(경북 포항)
이한보름(경북 포항)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은 영국에서 1844년 설립된 로치데일 협동조합이다. 영국 맨체스터 북부의 로치데일에서 설립된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28명의 방직 노동자가 결성을 하였는데 정확한 물량과 공정한 품질, 정직한 판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성장하였으며, 이후 전 세계 협동조합의 롤모델로서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치데일의 운영원칙은 자유로운 가입과 탈퇴, 1인 1표 의결권, 이용실적에 따른 이윤배당, 자본에 대한 이자제한, 정치와 종교의 중립, 시가(市價)에 따른 현금거래, 교육의 추진 등으로 현대 협동조합의 핵심 원칙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거대 자본에 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다수의 뜻을 같이 하는 약자들이 규합하여 구성한다. 산업혁명과 함께 자본력의 힘이 강해지면서 교섭력이 약한 다수의 조합원들이 모여 단체의 교섭력을 높이고 생산자단체와 함께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중요한 창구 역할도 해주고 있다.

생산자협동조합의 역할은 복잡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주고,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식을 개선하여 공동의 이익을 향해 조합과 조합원이 같이 성장해 나가는 데 그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농축협은 조합원들의 니즈를 충족해 주고 있을까?

외형적으로 보이는 모습만 판단하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골 지역마다 농축협이 달아놓은 플래카드에는 “사상 최대 예수금 달성”, “전년대비 높은 이용고 배당”과 같은 긍정적인 내용들이 빼곡하다. 농축산업의 규모화를 통해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실제 협동조합의 신용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이 가만히 두면 매년 최고 예수금액을 달성하는 양질의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경제사업은 천덕꾸러기 사업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농축협 입장에선 매년 적자가 나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경제사업에 집중하기보다, 수익성이 높은 신용사업에 역량을 더욱 집중하고 있고 이는 신경분리 정책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는 농협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농축산물 판매 기능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 확대로 이어졌다.

과거 농축협 상품은 최상의 농축산물을 싸게 살 수 있는 브랜드의 표상이었다. 조합원은 기꺼이 가장 좋은 농산물을 조합을 통해 출하하고,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믿을 수 있는 농축산물을 구매하는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이제 조합원이 생산한 가장 좋은 농축산물을 협동조합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조합이 경제사업에 주춤하는 사이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하였고, 백화점이나 폐쇄형 몰, 소셜커머스 등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판매 방법들이 생겨나면서 더 좋은 가격을 보장받는 플랫폼으로 유통 경로가 변하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협동조합을 통해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홈쇼핑, 맘카페, 밴드, SNS에 라이브커머스까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서 농가 개개인이 자신의 생산물을 보다 나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인터넷 블로그나 최근 유행하는 유튜브에는 다양한 농축산업 관련 정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물론 정제되지 않은 정보들도 있지만, 양질의 정보를 잘 추린다면 개인이 원하는 다양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어 농협의 교육 기능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물리적 경제시스템과 가상경제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가상세계의 게임을 통해 농사를 지으면 그 포인트로 실제 농산물을 집으로 배달해 주는 시대. 변하지 않고 방관하다 보면 SNS나 유튜브가 협동조합을 대체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협동조합이 시류에 따라가기 급급하기보다 반발짝 정도 앞서 달려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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