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만 죽이는 물가정책

  • 입력 2022.08.28 18:00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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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전북 김제에서 농민들이 황금 들판을 갈아엎었다. 일주일 후에 수확할 논 1,200평이 트랙터에 으깨졌다. 작년 수확기 이후 쌀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 산지 쌀값은 23.6%나 하락했다. 문제는 햅쌀 수확기를 맞아 쌀값 회복 조짐이나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양곡관리법 개정’, ‘쌀값 보장하라’, ‘변동직불금 부활’, ‘쌀을 지키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죽 답답하고 절박하면 농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를 갈아엎겠는가. 그뿐만 아니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도청에 벼 가마를 쌓는 적재 투쟁이 벌어졌다. 수확기를 맞은 농민들의 불안과 분노가 쌓여가고 있다. 쌀 적재와 논 갈아엎기 투쟁은 전국 곳곳으로 확산될 양상이다.

한편 정부는 소고기·돼지고기·마늘·양파·감자 등 주요 농축산물에 대한 저율할당관세물량(TRQ) 확대와 조기 수입을 강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마늘·양파는 가격이 폭락했다. 반면 농민들은 영농비 폭등에 애써 농사를 지어도 손에 쥐는 것은 고사하고 빚이 쌓이는 상황이다. 비료, 농약, 면세유, 사료값, 인건비 뭐 하나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대부분 최소 50%에서 100% 이상 가격이 오른 것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정부는 오로지 물가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농축산물 가격을 억제하고 있다. 마치 농축산물이 물가의 주범인 양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방문해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추석 성수품인 축산물, 과일, 채소 등의 수급 상황과 가격 동향을 점검했다. 대통령의 보여주기식 물가 행보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더욱 농축산물 가격 통제에 나설 것이고 농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핵심을 둔 것 역시 물가안정이었다. 당면한 현안인 쌀값과 영농비용에 대한 대책은 전무했다. 농산물값만 억제하면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본지는 한국농수산식품공사(aT)에서 제공하는 월평균 농산물 소매가격을 이용해 가상 장보기(쌀 5kg, 양파·대파 각 1kg, 감자·당근 각 500g, 고춧가루·깐마늘 각 200g, 청상추 100g, 배추·양배추 각 1포기, 무·애호박 각 1개)를 해봤다. 조사 결과 비용이 가장 적게 든 달은 2019년 8월(3만5,696원), 가장 많이 든 달은 2020년 9월(5만2,941원)이었다. 전체 평균비용(4만1,820원)과 비교하면 가장 많이 든 달의 차이는 1만1,121원이다. 이러한 가격 차이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농산물 동반 폭락사태와 홍수로 인한 폭등인 상황에서 발생한 가격이다. 그런데 국내 승용차 평균 주행거리(37.2km)에 연비 15km/ℓ를 가정하면 휘발윳값이 500원 오르면 매달 3만7,200원의 가계 부담이 발생한다. 이렇듯 주요 농산물 가격이 아무리 오른다 해도 유류값 인상에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되는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품목별 물가상승 기여도 자료에 의하면 농축산물은 17%에 불과하고 공산품이 49%, 서비스가 33%에 달한다. 결국 농산물 가격을 억제한다 해도 물가안정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농축산물이 물가의 주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농축산물 가격억제 정책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 즉시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급등한 영농비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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