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우량농지 보전, 식량주권 지지 및 농민소멸 예방의 보루

  • 입력 2022.08.28 18:00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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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새 정부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대통령 업무보고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의 농정철학과 농식품부 장관의 농정방침이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업무보고에서는 농민의 삶이나 친환경 축산 대책에 대한 내용을 찾기 어려웠지만, 대신 반려동물이 중요 정책 대상으로 다뤄졌다. 이례적이었다. 식량자급률을 현재 45%에서 ‘50% 이상’으로 상향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대선공약 때처럼 선언적 수사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식량자급률 50% 달성을 위해 농지확보는 현재 150여만ha 수준을 보전하겠다거나 그것이 가능하도록 170여만ha 정도로 확충하겠다는 등의 목표지표를 제시해 줬으면 좋았을 뻔했다.

물론 식량자급률 1%를 올리는 것 자체도 현실에서는 참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인수위 활동과 농식품부 장관 지명 후 충분한 준비기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정부 5년간 농정철학의 부재와 농정방침의 전문성 빈곤으로 말미암은 저조한 공약 이행에 대한 실망감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볼 때, 새 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화두를 우량농지 보전으로 옮겨보자. 우량농지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문전옥답을 뜻했으나 지금은 농업 기반이 잘 정비돼 농사짓기가 좋거나 농업환경 보호를 통해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유지해야 할 전략 농지를 의미한다.

농지전용과 용도변경은 비가역(非可逆)적이라서 합법·불법·편법할 것 없이 한번 개발해 버리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 항간에는 농업진흥지역 농지를 농가소득 창출을 위해 주곡 생산보다는 비농업용으로 개발하자는 것이 마치 농업·농촌을 위한 선심인 것처럼 주장하는 흐름이 있다. 공직자와 정치인, 학자 등 연구자들은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줘야 한다. 그냥 농민권익을 시장에서 각자 해결하라고 하면서 식량주권을 논하는 것은 허망하다.

그럼 식량주권의 지표는 무엇이 적절한가? 보통 사람과 가축이 먹는 곡물을 중심으로 계산하는 곡물자급률이 일반적이다. 수입된 곡물량의 절반 이상을 사람보다는 가축이 소비하고 있다. 온실가스 문제 포함해서 친환경축산으로의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지금 이 곡물자급률은 20% 마지노선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 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경제지표로서는 극히 비현실적이다. 사람 식용만 계산하는 식량자급률이나 에너지(영양)자급률, ‘유사시’ 국내외 농기업 투자나 국내외 곡물메이저 무역기업 투자 등 국제공급망 확보를 통해 곡물을 도입하자는 식량자주율(식량자급력) 등은 보조지표다. 우리는 구제역,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수출국의 식량보호주의 등이 국가 간 식량 이동을 제약하는 심각한 외생변수가 될 수 있음을 상당히 체험했다. 올해 쌀 생산량을 예측해 선제적 쌀 시장격리 시나리오와 쌀 수요 확대 방안을 공표해서 지금부터 쌀 가격 안정 대책을 세워야 한다. 주곡인 쌀이라도 지켜 둬야 한다.

요컨대, 첫째, 우량농지 보전은 많은 예산 투입 없이도 국가가 ‘경자유전의 원칙’이라는 헌법 정신을 천명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부동산 투기, 농지 투기를 막지 못해서 정권실패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선출직 지자체장이 농지법 위반 논란이 있는 사람을 고위공직자로 임명한다는 어이없는 일도 보도되고 있다.

둘째, 지난 5월 18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농지법 54조 ‘농지의 소유·거래·이용 또는 전용 등 실태조사’에 따른 농지조사를 시행하도록 농식품부는 제대로 된 지침과 조사자원을 지자체에 내려 줘야 한다. 공직자들이나 농지 소유자들도 자발적으로 농지법을 준수해야 한다.

셋째, 진짜 농민들이 농촌에 정주하도록 농지를 매개로 해 식량주권을 지키는 공무원 나아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키는 생태해설사 역할을 하도록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선진국 수준의 농민관이다. 농촌지역에서 농민으로 농사지으며 사는 것에 비전이 있어야 누구든 농촌에 정착하는 것이다. 정부가 시설자금 등 융자해준다고 해서 청년농부 3만명이 금방 육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에 경험했다. 요즘 청년들이 일자리 문제로 절박하기는 해도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은 알아야 한다.

넷째, 지방소멸은 농민소멸에서 시작된다. 지금 농민소멸은 농촌소멸, 지방소멸, 도농공동체 간의 양극화 문제의 선행지표다. 지방정부와 지역 국회의원직 등은 소멸되도 땅은 소멸되지 않을 테니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농촌소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농민소멸에는 다른 기회요인이나 대안을 찾기 어렵다. 진짜 농민이 농사짓고 있는 우량농지를 보전하는 것이 결국 주권국가를 지키는 궁극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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