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의 위기’ 속 아직도 부재한 여성농민권리, 어떻게 찾을까

2022 전여농 정책대회-대회사, 사례발표

  • 입력 2022.08.28 18:00
  • 수정 2022.08.28 19:04
  • 기자명 한우준·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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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김태형 기자] 

자신들의 사회적·제도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여성농민들이 본격적 투쟁을 시작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이를 받아안아야 할 정부는 그간 농민들의 진의를 법과 제도에 제대로 반영하는 것에 소홀했다. 그 결과가 여성농민의 안정적 영농에 사실상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농업경영체 공동경영주 같은 제도였다.

이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국회 농해수위 소속 국회의원(서삼석·신정훈·위성곤·윤재갑·이원택)들의 관심에 힘입어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과 농민기본법 제정을 위한 2022 전여농 정책대회’를 지난 24일 국회 박물관에서 열었다. 참가자들은 ‘농의 위기’ 속에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고 있는 농민의 권리, 그 가운데서도 상대적 결핍이 명백한 여성농민의 권리를 어떤 수단과 전략을 통해 확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정리 한우준·김태형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24일 국회 박물관에서 열린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과 농민기본법 제정을 위한 2022 전여농 정책대회’에서 전국에서 모인 여성농민들이 토론자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4일 국회 박물관에서 열린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과 농민기본법 제정을 위한 2022 전여농 정책대회’에서 전국에서 모인 여성농민들이 토론자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대회사 여성농민 법적 지위 인정, 쉽지 않지만 가야 할 길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전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여성농민들의 처지가 열악하다는 것이 많이 안타깝다. 여성농민들은 농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왔다. 때로는 세상과 싸우고, 때로는 설득해왔다. 그 시간으로 오늘 자리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여성농민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 자체로 역사의 큰 발전이며 세상의 진보다. 그래서 여성농민이 한 사람의 농민으로 인정받는 건 우리 사회 큰 한 걸음이다. 사회적 지위를 가지기 위해 또 싸워야 한다. 한 사람의 농민으로,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싸움이다. 법적으로 인정받는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한 싸움이다. 지난 싸움이 그랬듯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농민은 생명을 키워낸다. 땅에서 돋는 농작물을 키워내는 일은 이 땅의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사명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우리 이름을 얻기 위해 싸운 것도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싸운 것도 거기에 닿아있다. 이 노력은 우리 사회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농민기본법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이 애썼다. 긴 시간 토론해주신 분들, 입법청원을 성사시키기 위해 추운 겨울 마을 구석구석 다녔던 여성농민들, 농민기본법의 초안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 연구하고 농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준 국민입법센터 변호사님들께 감사드린다. 나머지 몫은 국회의원과 우리 여성농민의 몫이다. 국회의원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농민의 힘을 믿고 앞으로 나서달라. 국회의원들이 나서기만 하면 우리 여성농민들은 달려들어서 우리 목소리를 찾아낼 것이다.


사례발표 “남편을 공동경영주로 올렸더니 똑같은 차별 겪어”

정영이(전남, 공동경영주)

농사지은 지 30년째인 저는 한 맺힌 일이 하나 있다. 이장을 10년 전에 하게 됐는데, 우리 마을의 첫 번째 여성 이장 사례다.

마을마다 한 명씩 지역농협 대의원이 되는데 보통 이장이 당연직처럼 대입된다. 그러면 이제 제가 이장이 됐으니 당연히 대의원도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농협 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복수 조합원 제도 시행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여성운동을 30년 동안 하면서도 정작 저는 조합원 가입을 안 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이제 오기가 생겨 조합원을 가입하려고 찾아갔더니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내 이름으로 된 농지원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농협 복수 조합원 제도를 우리 전여농이 만들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농지원부를 만드는 거였다. 그러려면 세대를 분리해야 했고 그래서 우리 마을에 있는 시댁으로 이사를 갔다. 이장 임기는 이미 끝난 뒤였고 그 때서야 조합원 가입을 할 수 있었다. 여성 할당제로 다음 대의원 선출할 때를 노렸지만 할당이 가능한 만큼의 대의원 총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직까지 한 번도 대의원을 하지 못했다.

이후 시댁에서 제가 주소를 두고 있어 뭔가 안 된다는 이유로 다시 남편의 주소로 옮겨가니, 제가 경영주가 되면서 받았던 농협의 면세유 카드는 거짓말처럼 바로 사용이 불가능해지고, 농산물 판매대금이나 농자재 구입 실적도 전부 남편의 명의로 올라가게 됐다.

어떻게든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 2017년에는 농업경영체 등록 때 저를 경영주로 올려 버렸다. 남편은 공동경영주도 아닌 가족 종사자가 됐다가 1년 뒤에 공동경영주로 올렸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 전 농업용 굴삭기를 새로 바꾸면서 사업자등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등록을 하면 남편의 공동경영주 지위가 삭제된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 여성농민이 공동경영주로서 겪고 있는 일과 똑같은 셈이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남편이 경영주, 제가 공동경영주다.

 

사례발표 “‘공동경영주’, 기대했지만 현장선 되는 게 없어”

강다복(전북, 조합원 가입 문제)

6월에 조합에 비료를 사러 갔는데, 담당자가 등기부등본 한 통 떼달라 했다. 등기부등본이 왜 필요하느냐 물었다. 농지원부가 이제 농지대장으로 올해부터 바뀌었다. 그동안 농지원부에 남편과 제 주소가 같은 주소로 돼 있으니까 농지원부가 그 역할을 해줬는데, 농지대장으로 바뀌면서부터는 남편과 한 집에 주소가 안 되어 있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 경영체 등록에 다 들어가 있는데, 공동경영주로 돼 있으면 주소가 한 개로 돼 있는 것 아니냐’ 물었는데, 그래도 주민등록등본을 떼던지 내 앞으로 돼 있는 농지대장을 떼줘야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 내가 1997년도 조합원 가입할 당시에는 가입 조건이 따로 농사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증명해서 가입을 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시점에 조합원을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서류를 내라고 하니 갑갑하다.

농협 조합에서 실태조사를 해야 하는데 이게 필요하다고 하니 일단 농지대장을 떼어다 주고, 정책위원장한테 현장에 이런 일이 있는데, 공동경영주로 경영체 등록이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더니, 법이 그렇게 돼 있다고 하더라. 여성농민 지위 향상을 위해 애쓰고 그 결과로 2016년에 공동경영주를 만들어서 이제는 법적 지위도 인정받아서 여성농민으로서 지위가 개선될 거라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보니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우리 여성 조합원들은 실적도 만들어야 하고, 앞으로 무엇인가를 계속 증명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농민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고, 권리를 주는 것도 아니다. 현장 농민들은 까딱 잘못하다가는 조합원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이런 사례들이 발생하게 생겼다. 끊임없이 내가 농민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밖에 없는 지금 현실이 굉장히 안타깝다. 농민운동을 한다고 35년을 지역에서 발버둥 치면서 여성농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현장에서 뛰었지만, 지금 여성농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례발표 “농사·생존 위한 겸업, 대체 뭐가 잘못됐나”

김명희(경남, 겸업 여성농민)

남편의 마을로 귀향해 시부모님과 농사짓고 ‘언니네텃밭’ 실무 일을 10년간 하고 있다. 제가 언니네텃밭 일을 하면서 받은 실무 인건비는 월 40만원이다. 여성농민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고 소규모로 생산자들이 농산물을 직거래해 수입을 만드는 구조라 인건비를 만들기 힘들다. 그럼에도 자부담으로 4대보험을 가입했다. 인건비가 40만원밖에 안 돼도 4대보험을 가입하면 노동자로 인정받아 실업급여, 출산·육아수당,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으로서는 기후 이상으로 농사가 수입이 많이 없어도 보호해 주는 대책이 없고 아이를 낳았다고 출산 육아 휴직에 대한 보호가 없지 않나. 그런데 노동자에게는 이런 대책이 있으니 노동자의 지위를 얻을 수 있으면 얻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또한 저는 여성농업인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농업인을 교육·문화적으로 지원하고 여성농업인 정책을 홍보 수집하는 사업을 한다. 현장에 여성농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하고, 그래서 농사짓는 여성농민이 일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4대보험에 가입돼 있기 때문에 공동경영주로도 등록이 안 된다. 농촌에서 농사짓고 있지만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은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도 흔히 있다. 보통 요양보호사, 생활지원사 등의 일을 한다. 우리의 일은 도시·공장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 내에서 농촌을 유지하고 지역민을 돌보는 일이다. 이 일을 해서 대단한 수익을 버는 것도 아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 100만원에서 200만원 안쪽의 돈을 번다. 이렇게 버는 돈으로 농사에서 나는 적자를 메우고 원자재를 구매한다. 이는 오히려 농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성농업인 수당 또한 못 받았다. 실제 여성농민이 그나마 있는 쥐꼬리만한 혜택도 못 보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농촌 사회를 유지하고 지역민을 돌보는 모든 여성농민에게 그에 맞는 지위와 권리를 보장해 달라.


사례발표 “농민이면 누구나 농민수당 받을 수 있어야”

김미랑(제주, 농민수당 제외)

지역에서 30년 동안 농사를 짓고 있다. 그중에 20년은 남편과 함께 하고 10년은 독립적으로 혼자 하고 있다.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자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에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미술학원에 보내달라 했다. 미술이 돈이 조금 많이 드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눈을 감고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런데 애가 동네 미술학원에 계속 찾아갔나 보더라. 미술학원 선생님이 나한테 전화가 와서 ‘입시학원에 보내라’면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라고 하더라.

가슴이 너무 찢어졌다. ‘내가 사는 게 뭘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내가 살아서 아이들의 장래도 책임지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살아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를 3~4시간 정도 하면서 학원비를 벌었다. 나머지 농사일은 남편이 했는데, 여성농민회 활동하면서 농사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남은 시간은 농사일을 시작했다. 농업경영체 등록도 따로 하고 여러 가지 농법도 남편과 다르게 친환경 농법, 생태농법으로 농사지었다. 제주도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농민수당을 지급했다. 그런데 농민수당을 받으려면 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4대보험 때문에 못 받으니 신청 안 했다. 농민수당 지급하라고 매일 서명받으러 다녔으면서 정작 저는 못 받게 되니까 남편이 자기가 신청해준다고 도장을 달라더라.

결국 카드는 나왔는데 돈은 안 나왔다. 저만 이런 게 아니다. 같은 동네 언니는 코로나19 때 노인들 열 체크 하러 다녔다고 해서 안 나왔다. 며칠 일했다고 4대보험 때문에 농민수당을 못 준다고 한다. 사회적·공익적 가치 때문에 농민수당을 받아야 한다고 서명받고 다녔다. 4대보험이라는 잣대로, 당당한 농민인데 왜 농민수당을 못 받아야 하는지 너무나 억울하다. 농민수당은 4대보험 기준이 아니라 농민이라면 받을 수 있도록 반드시 법적 근거를 다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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