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시집살이② 열여덟 괴산 처녀 진천으로 시집가다

  • 입력 2022.08.21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서기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매주 일요일에 라디오 전파를 탔던 60분물 「일요다큐멘터리 이제는 그리운 사람들」(KBS제1라디오)은, 대체로 1970년대 이전까지의 우리 민중생활사를, 매주 주제를 달리해서 다큐드라마 형식으로 방송했다. 주제를 정하고, 대상을 선정하여 취재를 하고, 취재한 녹음물을 기초로 극본을 쓰고…하는 일체를 내가 혼자 맡아서 했다.

서기 2003년 6월 첫째 주에 방송할 이야기의 주제를 우선 ‘시집살이’로 정했는데, 그러고 나니 취재를 어디로 갈 것인지가 난감했다. 취재대상을 찾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선팔도 방방곡곡 어느 고을에나 할머니들은 살고 있을 것이고, 가령 100명의 할머니를 만나면 100가지의 시집살이 얘기를 들을 수가 있다.

할머니들이 직업을 물어올 경우 소설 쓰는 일을 한다고 대답을 하면 “아이고, 나 살아온 얘기를 글로 적어 놓으면 소설책 백 권도 넘을 것이여”라는 말이 단박에 건너온다. 모르긴 해도 그 ‘살아온 얘기’ 중 대부분은 ‘시집살이’에 얽힌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할머니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도 시집살이 얘기야 풍성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아무 데로나 갔다.

충청북도 충주시의 변두리 마을(목행동)에 있는, 한 소규모 아파트 단지의 경로당으로 무턱대고 찾아갔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인지라 누구나 시집살이에 얽힌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터이지만, 그 소싯적의 애환을 털어놓는 것이, 아무래도 남편과 자식들의 혈육에 대한 흉허물을 들추는 것이라고 여긴 때문인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대 중반의 몇몇 할머니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할머니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먼저 긴 한숨부터 내쉰 다음에, 어렵사리 그 시절의 얘기를 엮어갔다.

우리 나이로 18살의 나이에 충청도 괴산에서 진천군 덕산면의 어느 마을로 시집을 갔다는 유정윤 할머니(1927년생)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철없는 나이에 친척의 중신으로 시집을 갔지유. 덕산면 산청리라는 그 동네는 외진 곳에 오막하게 들앉았는데, 불편한 점이 뭣이냐면…방앗간이 멀었시유. 아이고, 그리고 막상 시집을 가보니 식구는 또 얼매나 많은지….”

이 할머니가 시집갔던 해는 해방되기 1년 전인 1944년이었다. 우리는 그저 식구가 많다고 얘기할 때 ‘식구가 열둘은 족히 된다’고 말하는데, 이 할머니가 철모르던 열여덟 살짜리 새색시 시절에, 남편의 얼굴도 구경하지 못 한 채 무턱대고 들어가서 살았던 시집의 식구가, 실제로 열두 식구였다. 시부모를 모셨을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외에 또 어떤 식구들이 있었는지 들어보니….

“시할머니 있고, 맏동서 내외 있고, 시동생이 셋이고, 시누이에다, 오촌 당숙까지 자식이 없어서 거기 와 살고 있었고…하여튼 열두 식구였어유. 동네에 방앗간이 없어서 날마다 도구통에다 곡식을 찧어서 밥을 지었다니께유. 시암도 멀어서 물도 매일 동이로 길어다 먹었지유.”

새벽, 닭이 운다. 새색시는 턱없이 모자란 잠 때문에 자꾸만 이불속을 파고드는데, 야속한 신랑은 흡사 심청이 잡으러 온 인당수의 뱃사공처럼 닦달해댄다.

-첫닭 울고 나서 이번이 시 번째여! 빨리 안 일어나고 뭣 하는 거여! 할머니한테 혼날라고.

눈비비고 나가니 맏동서도 눈꺼풀에 졸음을 달고 나온다. 시할머니의 명령이 추상같다.

-동튼 지 오래됐다. 보리쌀 물 불렸으면 도구통에 퍼 담거라!

남자들은 아직 곤한 잠에 떨어져 있는 새벽시간에 여자들의 하루가 이렇게 시작된다. 물 불린 보리쌀을 절구통에 넣고서, 두 며느리가 절굿공이 하나씩을 나눠 들고 방아를 찧는다. 보리방아를 다 찧으면 물에 씻어서, 그걸 다시 가마솥에 안치고 불을 때서 삶는다. 삶은 보리에다 다시 물을 붓고, 쌀이나 잡곡을 섞어서 안친 다음에 비로소 밥을 해야 한다. 그런 고단한 아침을 장차 십년을 살지 이십년을 살 것인지…기약이 없다.

키워드
##시집살이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