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농정’ 아닌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 문제다

[ 기고 ] 이대종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의장

  • 입력 2022.08.15 02:35
  • 수정 2022.08.15 07:08
  • 기자명 이대종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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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에 실린 ‘쌀 농정 너머 식량자급률 제고 농정 펼쳐야’라는 박진도 교수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글은 “되풀이되는 쌀 과잉과 쌀값 폭락에 대해 뭔가 근본적인 대책, 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쌀을 과도한 정치논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쌀만은 안 된다”는 쌀 예외주의가 등장하고 쌀은 우리 농업의 최후의 보루로서 모든 짐을 짊어졌다. 그 결과, 쌀은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식량자급률은 낮아졌다… 쌀이 너무 흔하다. 쌀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회복해 쌀의 시장가치를 높이는 게 급선무다. 논 면적을 유지하면서 쌀(주식용)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쌀에 더 이상 과도한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쌀과 다른 작물과의 균형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박진도 교수는 우리 농정의 주된 특징을 ‘쌀 농정’이라 평가하고 여기서 벗어나야 쌀 문제를 해결하고 식량자급률도 높일 수 있다 말한다.

옳지 않다. 우리 농정의 근본 특징과 방향은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수입개방과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추구하고 보장함에 있다. 우리는 이를 일러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라 한다.

개방농정을 본격화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래 우리 농정은 이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체질화해왔다. 그들은 유일하게 예외로 남겨놓았던 쌀조차 몇 차례의 재협상과 정책 개편을 통해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의 틀 안으로 완벽하게 편입시켰다.

박진도 교수는 그간 역대 정부가 정치논리를 앞세워 쌀을 특별히 대접해온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농민들의 투쟁과 국민적 여론에 밀려 시늉만 했을 따름이다. 오늘날 쌀값 폭락의 근본 원인은 쌀에 대한 보호조치를 하나하나 해제시켜 내동댕이친 데 있지 과도한 보호와 예외주의의 결과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체제는 외세(이들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것은 초국적농식품복합기업이다)의 부당한 간섭과 이에 굴복하고 체질화한 정부와 관료집단에 의해 유지, 운영되고 있다. 외국농산물의 무차별한 수입, 심지어 의무수입이라는 강도적 규제가 판치는 현실을 바로 보지 않고 ‘근본적인 대책’을 논할 수 없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쌀값 폭락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정부의 집요한 개입과 조작에 따른 의도된 결과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2021년산 쌀 시장격리 역공매방식 최저가 입찰 대규모 유찰사태에 따른 전국농민대회'에서 5개 농민단체 소속 농민들이 정부의 역공매 최저가 입찰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월 2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2021년산 쌀 시장격리 역공매방식 최저가 입찰 대규모 유찰사태에 따른 전국농민대회'에서 5개 농민단체 소속 농민들이 정부의 역공매 최저가 입찰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문재인정부는 변동형 쌀 직불제를 폐지하고 시장격리제를 도입했다. 직불금 예산을 대폭 늘리고 시장격리제로 쌀값을 보장하겠다는 감언이설로 농민들을 속였다. 지난해 정부는 쌀값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정부 양곡을 적극적으로 방출하여 수확기 이전 쌀값을 낮추는 데 골몰했을 뿐만 아니라 양곡관리법에 명시된 시장격리 요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시행하지 않았다.

올 들어 때늦은 시장격리를 시행했으나 역공매 최저가 입찰로 쌀값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시늉뿐인 때늦은 조치, 본래의 취지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더욱 큰 폭의 쌀값 하락을 유도한 것이다. 다른 한편 지속적인 쌀값 폭락에도 불구하고 밥쌀용 쌀을 위시한 수입쌀을 끊임없이 시장에 공급했다.

정권이 바뀌고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가속화되는 인플레이션과 바닥을 치는 정부 지지율 속에 물가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윤석열정부는 농산물값 후려치기에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금 그들의 농정은 농산물값 후려치기에 집중되고 있으며, 그 주된 무기는 수입 농산물을 보다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박진도 교수는 “시장에 쌀이 넘쳐난다”는 한 마디로 상황을 단순화시켜 버리고 생산량을 줄이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에 쌀이 넘쳐나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는 표면적 현상 뒤에 도사린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진정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외면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농산물 가격폭락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농산물이 예외 없이 상시적인 가격폭락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현실에서 쌀 예외주의에서 벗어나자는 그의 주장은 이러저러한 대안 제시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쌀도 다른 농산물과 똑같은 길을 걷도록 하자는 것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런데 현실은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고 오히려 그것이 오늘날 쌀값 폭락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라는 우리 농정의 근본문제를 깨지 못하는 한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하다. 박진도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쌀 문제 해결과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한 여러 해법 또한 근본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의 기초 위에 다시 세워져야 한다.

무엇보다 쌀 대란의 위기에 직면한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고 당면한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중장기적 해결방안에 이르기까지 농민들과 함께 모색하며 싸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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