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시집살이①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 입력 2022.08.1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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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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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이 열리고 열예닐곱 살 처녀 윤희가 마당에 들어서더니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간다.

-엄니, 오늘 웃마을로 시집간 작은집 분희 형님 다니러 오는 날 맞지유?

-그래. 시방 고개 너머 어딘가 오고 있을 거야. 누가 마중이래두 나가 봐야 할 것인디….

-그러면 지가 마중 다녀 올게유.

폴짝폴짝 뛰며 동구 밖으로 나가고 있는 윤희가, 이런 노래를 흥얼거린다면 제 격이다.

 

형님 온다 형님 온다 / 분고개로 형님 온다 / 형님 마중 누가 갈까 형님 동생 내가 가지….

 

시집 간 새색시가 처음으로 친정에 다니러 온다. 이십 리 길을 걸어, 이윽고 처녀 시절에 넘나들던 고개를 넘어 채니,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며 정겨운 고향동네의 초가집들이 한눈에 안겨온다. 친정 마을을 다시 찾은 반가움과 시집살이의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오른다.

-어, 이게 누구여? 윤희가 여기까지 어쩐 일이여?

-어쩐 일이기는. 분희 언니 온다는 말 듣고 마중 나왔지.

-그래, 큰댁 식구들은 다 몸성히 잘 있겄지?

-우리 집 식구, 작은 집 식구들 다 잘 있으니께 그런 건 걱정 말고…. 우와, 우리 언니 시집가드니 얼굴이 그냥 보름달 맨치로 활짝 피었구먼. 언니, 여기 앉어서 좀 쉬었다 가자.

혼인 전에는 단짝으로 붙어 다니던 사촌 형제(자매)가 다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사촌자매가 주고받는 대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데까 /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 살이 / 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 둥글둥글 수박 식기 밥 담기도 어렵더라 / 도리도리 도리 소반 수저 놓기 더 어렵더라/ 오리(五里) 물을 길어다가 십리(十里) 방아 찧어다가 / 아홉 솥에 불을 때고 열두 방에 자리 걷고….

 

구전민요「시집살이 노래」다. 여기 나오는 ‘당추’는 당초(唐椒), 즉 고추의 다른 이름인데, 이 새색시는 시집살이가 텃밭에 심은 고추보다 더 맵더라고 털어놓는다. 살림에 서툰 새색시에게는 밥그릇에 밥을 담는 일도, 도리소반에 수저를 놓는 일도, 그저 어렵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오리(五里)나 떨어진 샘에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하고, 방아를 찧기 위해 곡식을 이고 십리 길을 걸어 다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육체적인 고단함이야, 시집 식구들 틈바구니에서 부대껴야 하는 정신적 고충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노래는 이렇게 이어진다.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님같이 어려우랴 /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 시아버지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 동새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시아버지를 대하기는 외나무다리 건너는 것보다 더 아슬아슬하고, 시어머니의 서슬은 나뭇잎보다 더 푸르다. 시집살이를 시키는 대상은 시부모만이 아니다. 동서는 거짓 고자질을 일삼고, 시누이는 걸핏하면 토라지고, 시아주버니는 성질머리가 뾰족하다. 그런데, 내 편이 돼 주어야 할 남편은 그저 미련둥이다. 거기다 자식은 칭얼대고….

이 구전민요의 내용은, 옛 시절 여인네들이 시집살이에서 겪었던 애환과 고충을 망라하고 있다. 그 시절 여자가 결혼을 한다(시집간다)는 것은 곧 남편의 집인 시집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시집살이는 ‘시가에서의 생활’을 이르는 말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전적인 풀이이고, 서슬 푸른 시집 식구들의 등쌀에 모질게 부대꼈던 며느리들의 수난을 일컫는 말로 굳어져 버렸다. 까마득한 옛날 얘기일까? 아니다.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젊었을 적 얘기다. 기껍지 않은 주제이긴 하나 그래도 한 번은 해야 할 얘기인 듯하여…시작해보기로 한다. 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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