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51] 덥고 무더운 날의 환상

  • 입력 2022.08.14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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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지난 주 서울에는 115년만의 큰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져 아수라장이 됐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려 산사태는 물론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이곳 내가 사는 영동지역도 호우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많은 비가 왔다. 그 후로도 많이 무덥고 비는 매일 오다시피 하고 하늘은 늘 흐려 있다. 예전에는 7월 중순이 지나 8월이 되면 장마도 끝나고 햇볕이 따가워 온갖 곡물이며 열매가 영글어 가는 성하의 계절이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 좀 더 나아가면 한반도, 그리고 지구 전체에 이르기까지 지구 환경은 변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 지구 환경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라 둔감한 인간들은 무디게 반응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주관하는 지구 살리기 협의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도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답보상태인 것도 사실이다.

서서히 진행되는 지구환경의 변화는 당장 생명체를 키워내야 하는 농민들에게 하루하루 긴장감을 줄 수밖에 없다. 8월 중순인데도 비가 계속 오고 햇볕이 나지 않으니 병충해가 만연함은 물론이고 작물이 무른 채 잘 자라지 않는다. 저 품질의 농산물이 생산될 수밖에 없다.

나의 작은 친환경 사과농장과 작은 텃밭의 작물들도 상태가 좋지 않다. 농사기술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사과나무는 습해가 염려되고 낙엽병이 살짝 나타나고 있으며, 한두 개씩 매달려 있는 조생종 사과는 자람이 느리고 맛과 당도가 떨어진다. 텃밭의 고추에는 이미 노균병이 나타나 물러지고 있으며, 토마토는 완숙이 잘 안되고 당도가 떨어지는 듯하다. 대부분의 노지 채소 재배 농민들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나와 같이 노지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노지재배에서 시설재배로 전환하면 어떨까. 사과는 물론 농장 전체를 비닐이나 유리로 덮어 온도와 습도, 병충해 등을 자동제어토록 하는 소위 스마트팜을 만들면 어떨까. 지원도 많이 해 준다는데.

그런데 스마트팜으로 전환하면 안정적으로 생산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그런 농업을 친환경유기생태농업이라 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메뚜기, 땅강아지, 거미, 개미, 개구리, 두꺼비는 물론 각종 다양한 식물(잡초)들은 스마트팜에 함께 들어 갈 수 없다. 수많은 토종 미생물들은 또  어떤가. 그래서 시설 안에서 이뤄지는 스마트팜은 친환경유기생태농업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비도 많이 오고 기온마저 30도를 넘어가는 요즈음 노지재배가 힘들어 잠시 스마트팜을 통한 시설재배 전환을 생각해 봤으나, 아무래도 나는 스마트팜을 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냥 힘들더라도 노지에서 다양한 곤충들과 풀들과 토종미생물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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