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서 키운 복숭아, 순간의 행복을 전하다

  • 입력 2022.08.14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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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전남 장성군 진원면에 위치한 과수원에서 청년농민 김재원(27)씨가 하얀 봉지에 쌓인 복숭아를 따고 있다. 화이트클로버, 호밀 등을 파종해 사용하는 초생재배로 인해 과수원이 온통 풀밭이다.
지난 8일 전남 장성군 진원면에 위치한 과수원에서 청년농민 김재원(27)씨가 하얀 봉지에 쌓인 복숭아를 따고 있다. 화이트클로버, 호밀 등을 파종해 사용하는 초생재배로 인해 과수원이 온통 풀밭이다.
김정원(21, 오른쪽)씨와 친구 이충일씨가 복숭아를 전동운반기로 옮기고 있다.
김정원(21, 오른쪽)씨와 친구 이충일씨가 복숭아를 전동운반기로 옮기고 있다.
김재원씨가 장대를 이용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복숭아를 따고 있다.
김재원씨가 장대를 이용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복숭아를 따고 있다.
김재원씨가 트럭에 실린 컨테이너 상자를 농장 작업장에 내리고 있다.
김재원씨가 트럭에 실린 컨테이너 상자를 농장 작업장에 내리고 있다.
포장을 마친 복숭아 상자와 선별할 복숭아가 작업장 곳곳에 놓여 있다.
포장을 마친 복숭아 상자와 선별할 복숭아가 작업장 곳곳에 놓여 있다.
‘행복을팜’ 온 가족이 복숭아 선별, 포장 작업에 나서고 있다.
‘행복을팜’ 온 가족이 복숭아 선별, 포장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네 조심히 오셔요!”

새벽에 일어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확인하자 위와 같은 답문이 와 있었다. 수신 시각은 자정하고도 33분. 대표적 여름 과일 중 하나인 복숭아 수확 현장 취재 차 연락한 이에게서 온 문자였다. 야심한 밤의 문자에 잠시 갸우뚱하며 지난 8일 새벽 전남 장성으로 차를 몰았다.

진원면에 위치한 농장 ‘행복을팜’에 도착하자 후계농 5년차이자 청년농민 김재원(27)씨는 이미 트럭 적재함에 빈 컨테이너 상자를 싣고 있었다. 그의 안내를 따라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자 복숭아 선별기 맞은편엔 포장까지 끝낸 복숭아 상자가 작업장 천장에 닿을 정도로 빽빽이 쌓여 있었다.

김씨는 “(일요일인) 어제 주문 물량이 많아 선별하고 포장하느라 자정을 넘겼다”고 말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답문까지 하며 장거리 운전을 염려해준 그의 마음 씀씀이를 그제야 헤아릴 수 있었다.

트럭에 빈 상자를 다 싣자 김씨와 그의 동생 정원(21)씨, 동생의 친구 이충일씨가 농장 인근의 과수원으로 차를 몰았다.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전동운반기에 빈 상자 일부를 옮겨 싣고 세 사람은 익숙하게 복숭아나무 사잇길로 스며들었다.

과수원은 말 그대로 온통 풀밭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농사를 짓는 김씨네 가족은 토양에 양분을 공급하고 다른 잡초를 자라지 않게 도와주는 화이트클로버, 호밀 등을 파종해 사용하는 초생재배로 복숭아를 키운다.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아 자연 친화적인 농업을 추구하고 있다.

재원씨는 “좋은 품질이 나오려면 자연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도록 나무 사이 간격도 일반 과수원보다 넓게 심었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복숭아 품종마다 가장 맛있게 익는 때가 있다며 이들 가족은 나무에서 복숭아가 최대한 완숙될 때까지 기다려 수확하고 있다. 풀밭 곳곳에 떨어진, 하얀 봉지에 쌓인 채 그대로 낙과된 복숭아는 소비자에게 최상의 맛을 선보이려 서두르지 않는 김씨네 가족만의 고집에 대한 기회비용인 셈이다.

재원씨는 “5·6호 태풍 ‘송다’와 ‘트라세’가 몰고 온 비로 수확을 앞둔 복숭아가 많이 떨어졌다”며 “낙과된 것과 선별에서 걸러내는 물량을 합하면 총 수확량의 30~4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확에 일의 능률이 쌓이고 쌓여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세 사람의 손발은 척척 들어맞았다. 복숭아를 따 상자에 담고 옮기기를 수십 차례, 두세 시간여 만에 트럭 적재함에 실었던 빈 상자 100여 개에 복숭아가 가득 담겼다. 8월의 강렬한 햇볕을 적당히 막아준 구름 덕분에 가끔 바람이 불어 땀은 흠뻑 흘렸어도 일손은 한결 가벼웠다.

작업장으로 돌아와 복숭아가 담긴 컨테이너 상자를 모두 내리자 선별, 포장 과정이 시작됐다. 복숭아 봉지를 벗기고 포장 상자를 만들고 주문 송장을 인쇄하는 등 적재적소에 온 가족이 배치됐다. 선별기 앞에선 재원씨와 부모님이 번갈아 가며 흠집이 있거나 짓무른 복숭아를 골라냈다. 크기, 무게에 따라 (4kg 기준) 8과에서 15과까지를 특대, 대, 중으로 나눠 상자에 담았다.

김씨네 가족은 유통기한이 짧은 복숭아 특성으로 인해 ‘당일 수확 당일 배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유통경로가 상대적으로 긴 도매시장 물량보다 직거래 물량이 월등히 많은 이유다.

재원씨를 처음 만나 인사를 하며 나눈 명함엔 ‘행복을팜’이란 농장 이름과 함께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순간은 매일 있습니다. 행복을팜은 여러분에게 그 행복한 순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백도 계열의, 나무에서 완숙된, 딱딱이 복숭아의 부드러운 과육과 달달한 맛을 좋아한다면, ‘행복을팜’의 청년농민과 온 가족이 농사짓는 복숭아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농장에서의 신선함을 그대로 배송받아 집 식탁에 앉아 한 입 베어먹는 그 순간, 행복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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