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용두산공원 사진사⑦ 이상훈 사진사의 못 다 찍은 사진 한 장

  • 입력 2022.08.0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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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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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깜박 잊고 있는 흑백사진 시절의 삽화 중에는, 그 시절을 건너온 사람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아, 그 때 그랬었지”하고 공감할 대목이 또 하나 있다. 1960~70년대의 어느 주말, 이상훈 사진사가 ‘사진 영업’을 하는 용두산공원으로 가보자.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됐습니다. 다음 일요일에 공원에 나와서 찾아가시면 돼요. 혹시 내가 안보이거든 ‘1번 사진사’를 찾으세요.

-아, 참, 아저씨! 중요한 걸 빠뜨릴 뻔했네요. 사진에다 글씨도 넣어줄 수 있지요?

-그럼요. 뭐라고 써넣을까요? 

-음, 고향 친구하고 용두산공원에 놀러 와서 찍은 거니까 그냥 ‘우정’이라고 써 주이소. 

-에이, 우정은 좀 싱겁고…‘추억의 용두산’이라 해주이소. 아니면 ‘그리운 친구’라고 하든지.

“사진에 들어갈 문구를 내가 권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원하는 대로 써 넣어 주지요. 가장 흔하게 주문하는 문구가 ‘우정’이에요. 연인끼리 찍을 때에도 ‘사랑하는…’ 이렇게는 절대 안 된대요. 물론 그 문구 밑에 사진 찍은 날짜는 기본으로 들어가지요. 아, 글자를 어떻게 넣느냐고요? 그거 쉬워요. 담뱃갑의 셀로판 포장지를 벗겨서 거기다 ‘추억의 용두산’이나 ‘그리운 친구’ 이렇게 쓴 다음에…인화지를 한 장 넣고 불빛을 비추고….”

이상훈 씨는 사진에 글씨 넣는 것쯤이야 아주 쉽다면서 일본말 사진용어까지 섞어가며 나름으론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으나, 그 방면의 지식이 맹탕인 나를 온전히 이해시키지는 못 하였다. 그런데 같은 공장에 다니며 매일 얼굴을 대하는 고향 동무가 함께 찍은 사진에다 ‘그리운 친구’라니…어째 좀 어색하긴 하다. 하지만, 뭐 그렇게 새겨 넣어서 우정이 도타와질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혹시 지금쯤 그 두 사람은 긴 세월 헤어져 지내면서, 소싯적에 용두산 공원에서 함께 찍은 그 사진을 가끔 들여다보며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 시절 흑백사진에 새겨 넣었던 글씨가 어찌 ‘그리운 친구’나 ‘추억의 용두산’ 뿐이랴. ‘이 순간을 영원히’ 같은 자못 시적인 구절들도 흑백사진의 하단에 아로새겼다. 유치하고 신파 냄새 난다고 흉볼 일이 아니다. 고단한 생활 중에서도 고만한 여유와 감성을 내보일 줄 알았던 ‘그 시절의 우리’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더 행복한가?

내가 찾아갔던 2001년 여름의 용두산공원은, 적어도 사진으로 밥벌이를 해온 공원사진사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파장, 혹은 폐장 분위기가 역력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예전 같지 않을 뿐 아니라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더욱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아직 카메라폰이 대중화하기 이전이었지만) 벌써 사진기는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되다시피 한 세상이 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승용차를 타고 전국의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터에, 대도시 한복판에 있는 그 공원이 더 이상 매력 만점의 공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진사가 몰려서 서른 명으로 제한했던 용두산공원의 사진사 수도 열 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손님들이 간간이 찾아와서 즉석사진을 부탁하는 일이 생겨났다. 부산으로 흘러든 러시아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백발성성한 공원 사진사들은 팔자에 없는 러시아 말 몇 마디를 익히느라 애를 먹는다.

“러시아 말 참 어려워요. ‘안녕하세요’는 ‘쯔드라스트…부이떼…’라고 하고, 반갑다는 인사는 뭐라더라, ‘오친…쁘리야…뜨나…’ 그러던가? 아, 잘 안 돼요. 이제 나도 은퇴해야지요.” 

이상훈 노인에게는 세상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고 싶은 사진 한 장이 있다. 등지고 떠나온 북녘 고향에 다시 찾아가서, 두고 온 가족과 친지들을 고향집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아놓고, 그 정겨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은 것이다. 그럴 기회가 쉬이 찾아올 것 같지야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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