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사과를 받았어요

  • 입력 2022.08.07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농산물 판매장을 열고, 택배를 취급하면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특히 여름철 옥수수와 농산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말 그대로 눈코 뜰 새가 없어 그저 이 여름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마음이 울컥하는 일이 생겼다. 얼마 전 동네 체육공원 앞에서 어릴 적 알던 옆 마을 어른을 만났는데 순간 하시는 말씀이 “결혼하더니 아주 좋은가봐~ 몸이 편한가 본데”라고 말을 건넸다. 결혼식을 치른 4월부터 이미 ‘남편이 잘해주나봐~’부터 시작해서 ‘남편을 기쁘게 해주려면 좀 더 찌워야지’ 등의 조롱인지 희롱인지 모를 말들을 수차례 들어온 터였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쌓여있던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지인의 면을 봐서 억지로 화를 삭이며 “무슨 말씀이세요~ 결혼한다고 엄청 열심히 뺀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아저씨 좋아하겠어요?”했다. 아저씨는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보이시며 “이따 운동 끝나고 치킨사께~” 하셨지만 나는 이미 마음이 상한 뒤였다. “살쪘다면서요. 아저씨 같으면 같이 먹고 싶겠어요?”라며 유난히 날카롭게 반응하고 돌아서버렸다.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한두 번 들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말에 상처를 받고 의기소침해질 성격도 아니건만 매번 생기던 작은 생채기들이 곪아 있었던 건지 점점 더 듣기가 싫고 기분이 나빴다. 이번에는 내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동안 이 지면에도 몇 번 썼던 것처럼 그런 경험이 또 하나 쌓였구나 하고 잊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 뒤 비가 오던 날이었다. 나랑 같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그 어르신의 부인이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태워다줄 수 있는지 물었고 난 흔쾌히 그러마 했다. 같이 돌아오는 길에 저녁밥을 사고 싶다면서 시간이 되는지 물었고 난 또 그러자고 했다. 둘이 저녁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어르신이 오셨다. 그리고는 너무나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그날 일을 사과하셨다. 본인은 그저 결혼 축하와 좋아 보인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이미 말을 뱉고 나니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고 너무 후회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사회가 변한 것을 자신도 알고 있고, 평소에도 신경쓰고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말실수를 하고 나서 너무 마음이 무거웠고, 일부러 부인에게 부탁해서 나와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셨다.

나는 순간 너무 울컥해서 눈물이 났고,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솟는다. 내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와 살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모 평가를 시작으로 애매한 수준의 성적 농담 등 불쾌한 말을 들어왔다. 그 때마다 적절하게 의사 표현을 한 적도 있고, 에둘러서 제지하거나 경고를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제대로 말도 못하고 돌아서서 혼자 화내고 후회한 적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한 적은 없었다. 귀농하고 5년 만에 처음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농촌이 가부장적이라고 얘기한다. 나 역시 도시에서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은 반강제라도 성평등 교육을 받고, 세상이 변하는 걸 겪으면서 변하고 있다고 하는데, 농촌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껴왔다. 어떨 때는 부족한 게 많은 농촌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감수도 하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그 사과는 너무 큰 감동이었고, 나중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분은 내가 농촌으로 돌아와 농민으로, 마을의 몇 안되는 청년으로 살아가는 내 삶을 다시 한번 긍정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우리 농촌사회도 조금씩 변하고 있고, 나 역시 그 변화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당연한 사과를 이제야 받는구나 라는 생각과, 과연 몇 명의 여성이 이런 사과를 받고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실수를 했더라도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는 제대로 된 어른의 행동이 사람과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이렇게 클 수 있음을 생각한다. 나는 아저씨께 진심으로 “이렇게 정중하게 사과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건 꼭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적고 많음과 상관없이, 남녀 구분 없이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면 그 전보다도 더욱 좋은 관계로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저씨, 정중하게 사과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