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잠 설치는 밤

  • 입력 2022.08.07 18:00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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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형. 형은 거름으로 뭘 써요?”

“유박을 쓰지.”

“축분은 안써요? 유기물 생각하면 축분이 더 낫잖아.”

“아이고 그걸 뭘로 펴. 유박은 트랙터에 다는 살포기로 하면 편하잖아. 유기물이야 계속 호밀 심어서 갈아 넣으면 그걸로 될 거고.”

“그래요. 형네 동네 머시기가 그걸 모르고 축분을 살포기로 뿌리려다가 죽을 고생 했다면서요?”

“그렇지. 축분은 기계가 막혀서 살포기로 안되지.  요왕씨는 뭘 쓰는데?”

“나는 축분 써요. 요즘은 축분도 목록공시 되는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리고 나야 한 작기에 삼백평 정도씩이니까 경운기나 화물차에 부려서 삽으로 펴요. 힘이야 들지만 아직은 할만 해요. 유박은 영 아닌거 같아서 몇년 전부터 안쓰게 되더라고요. 특히 하우스 안에는 문제가 많잖아요.”

“그렇지. 하우스는 쫌 그렇지.”

물빠짐도 안좋고 박한 땅을 구해서 10여년간 쓸만한 땅으로 만들어 농사하는 형이다. 왕겨도 꽤 집어넣고 구역을 나눠서 해마다 호밀을 심어 지력 유지를 하는 게 기본으로 잡혀 있는 양반이라 배울 게 많아 농사 이야기를 꽤 하고 있다. 최근 이러저러 고민이 많던 차에 상담받고 싶은 심정으로 물어본 거였다.

요새 왜 다들 유기농 하면 망한다, 먹고 못산다 하는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유기농은 태도로서의 유기농인가 그냥 인증제도 하의 유기농인가. 시장에선 가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지원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인증제도는 칼날을 점점 더 벼려서 농민들 목을 겨눈다. 이런 유기농을 계속 고집하는 게 맞는가. 내가 그동안 해왔던 유기농의 실체가 뭔가. 20년 가까이 돼서야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뭐 그동안 전혀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나 요즘 부쩍 심각해진 이유는 뭔가.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일반적으로 모두들 쓰는 유박을 거름으로 썼다. 몇년 농사를 하다 보니 축분에 비해 유기물도 없고 땅에도 별로인 것 같아서 이건 아니다 싶었으나 인증제도상 쓸 수 있는 거름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 의문. 유기농업은 물질과 자원 순환을 기반으로 하는 농사 아닌가?  왜 외국에서 수입한 기름 찌꺼기만 되고 국내 가축들 축분은 안되지? 그게 순환인가? 유박은 그냥 화학 비료를 대체하는 질소원일 뿐이다. 인증제도는 애초에 건강한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지력을 유지하는 내용보다는 질소원에 초점을 맞췄던 거구나 하는 뒤통수를 치는 순간적 느낌.

지력을 살리고 유지하는 과정보다는 결과적으로다가 티끌만한 농약도 검출돼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제도를 유지하려는 쪼잔함. 바람아 멈추어 다오 노래를 불러서 비산농약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닌데. 칼자루를 쥔 자의 쪼잔함은 힘없는 존재들에게 보통은 폭력으로 표현 되지.

상황이 빡빡해지고 문제 해결이 어려울수록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근본적인 원인부터 찾아내야 자칫 땜빵식으로 넘어가지 않고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여지가 그나마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 아닌지. 유기농업을 유기물(탄소)이 기본인 지력유지보다는 양분(질소)에다 촛점을 맞춘 건 아닌지.

땅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보다는 유기농자재에 훨씬 큰 관심 갖는 농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제도가 그리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등에 업고.

20년 동안 땅을 만드는 게 기본이니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땅을 만들어 토양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고 그래도 땅의 미네랄 균형이 아주 중요하니 이러저러한 작물을 돌려 짓는 게 유기농의 기본이라는 충고 내지 교육을 받은 기억은 별로 드물다. 이러한 거름을 쓰고 저러한 자재를 쓰라는 충고 내지 교육 받은 횟수에 비해.

근본적인 자성이 현재 스코어 망하기 직전인 대한민국 유기농업을 구제할 기본 출발점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요즘 밤잠을 자주 설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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