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공급 위주의 축산정책, 이젠 정말 바꿔야 할 때”

인터뷰 l 정용범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 대의원회 의장

  • 입력 2022.08.07 18:00
  • 수정 2022.08.07 21:1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전국에 얼마 없는 육우 집중 사육지역인 경기도 안성시 농가들은 최근 '치킨값만도 못한 젖소 숫송아지'를 경찰과 실랑이 끝에 농림축산식품부 앞에 내려놓았다. 끝날 줄 모르는 사료값 고공행진 탓에 축산업계 전체가 축종을 가리지 않고 위기를 외치는 상황이지만 육우산업은 그중에서도 분위기가 가장 심각하다. 최근 육우자조금 대의원회의 대표로서 임기를 한번 더 연장하게 된 정용범 대의원회 의장을 통해 우리 육우산업의 나아갈 길을 들었다.

 

축산업에 뛰어든 지가 벌써 40년에 가까워진 정 의장의 농장은 현재 220여두의 육우를 기르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한 낙농업에 더해 육우 사육도 병행하게 된 점은 여타 낙농·육우농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곳만의 철학이 존재한다. 

정 의장은 자신의 농장에서 나가는 고기가 ‘상품’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품목을 불문하고 우리나라 어느 농장에서든 흔히 세울 법한 이 철학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 육우의 현실적 지위를 생각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 인터뷰 당시 정 의장이 최근 출하한 소 17마리 가운데 7마리가 1등급을 받았는데, 육우농가로서 41%의 1등급 출현율은 그 실천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성적표다. 지난 6월 한 달 간 우리나라 시장에 출하된 육우들 가운데 1등급 이상 판정을 받은 두수는 전체의 14%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과나 배도 수확시기의 짧고 긴 정도에 따라 조생종·중생종·만생종으로 나뉘지 않습니까. 11월에 수확해야 하는 만생종을 9월에 수확해 먹으면 풋내가 나고 맛이 없습니다. 고기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무조건 소비자의 기대치에 상품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고기가 맛있어야 하는데, 육우를 20개월만 길러 내선 소비자들 사이에서 육우가 맛없다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육우도 최소 26개월은 길러야 완전히 성숙한 고기가 됩니다. 28개월을 기르면 한우에도 충분히 맛을 견줄만 합니다.”

‘익은 고기를 만들어 내자’는 정 의장이 육우농가를 대표하는 자리에 나설 때 항상 첫 인사로 하는 말이다. ‘국내산 소고기’가 함께 표기된 육우를 먹고 ‘국내산은 맛 없다’고 인식한 소비자가 많을수록 수입산 소고기 소비량이 늘어날 거라는 게 그의 가장 큰 우려다. 하지만 육우농가 대부분은 마음먹기와 무관하게 사육기간을 쉽사리 늘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무허가 축사 양성화 이후 나중에는 축사 허가를 받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한 농가들이 많이 생겼고, 무리하게 빚을 내 새 축사를 지은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빚을 지다 보니 소를 구매할 비용이 없어 위탁사육을 하며 인건비와 임대료를 버는 경우도 많아졌지요. 22~23개월령의 출하는 그 위탁사육을 맡기는 사료회사가 주로 원하는 방식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들이 보다 축산과 육우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 생산기반을 닦은 정 의장과 달리 대부분의 농가는 경영의 악화를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현재의 사육환경이 악순환의 고리를 계속 잇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그는 위탁사육의 비중이 많은 육우산업 특성상 제도권이 육우 사육과 유통의 구조에 크게 개입해 조력하지 않는 한, ‘저급육’ 논란과 그로 인한 산업의 위축을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료값이 감당이 안되는 수준으로 올라 많은 축산농가들이 부채에 시달리고 있죠. 육우 쪽에선 적어도 (도체중) 450~500kg에 소를 출하시켜야 하는데 기준에도 못 미치는 400kg의 육우를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격도 많이 못 받는데 그 돈으로 다시 사료를 사면 당연히 남는 것이 없죠. 사료값이 오르면 농가소득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최근 불어닥친 사료값 폭등 사태는 전국의 모든 축산농가를 괴롭히고 있지만, 육우농가에게는 특히 매섭게 느껴지는 시련이다. 비육 생산 전반에 걸쳐 사육기간 단축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더욱 퍼졌고, 애초 현 등급제 체계 속에서 잠재력의 한계가 명확한 육우는 고기의 질과 양이 감소했을 때 받는 타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수입산 쇠고기와 시장이 직접적으로 겹치는 육우는 정부의 무관세 수입 결정 이전에 이미 군급식 납품 물량의 대량 축소라는 직격탄까지 얻어 맞아, 삼중고 끝에 현재 젖소 숫송아지의 산지가격이 1만원도 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정 의장은 생산비 폭등에 대한 대책 없이 소비자 물가만 신경쓰는, ‘소비·공급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이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농민들이 있기 때문에 농협중앙회가 있고, 농협은행이 있습니다. 은행이 부실채권에 대비하는 것처럼 농협은 축산업에도 충당금을 설정하고 지금과 같이 문제가 생길 때 농가를 위해 쓰는 정책(사료안정기금과 같은)이 필요합니다. 1차산업이 무너지면 결국 전 산업이 무너집니다. 식량자급률이 무너지면 수입산에 의존하게 되고 수입·유통회사의 독과점만 가중될 것입니다. 이는 결국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