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법성중학교에 간 농민 ‘선생님’들

농민들이 직접 농업과 식량자급·건강한 먹거리 중요성 교육

전농 광전연맹, 전남교육청과 2021년부터 청소년 대상 ‘수업’

  • 입력 2022.08.07 16:45
  • 수정 2022.08.07 16:46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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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지난해부터 전남도 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농업의 중요성과 농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전남 영광군 법성중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교단에 섰던 농민 주경채·노병남·이석하씨(왼쪽부터).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지난해부터 전남도 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농업의 중요성과 농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전남 영광군 법성중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교단에 섰던 농민 주경채·노병남·이석하씨(왼쪽부터).

농민들이 특별한 교육에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의장 이갑성)은 전남교육청과 협의해 지난해부터 2년째 학교로 찾아가는 수업 ‘농민의 꿈을 보다’를 진행했다. 선생님으로 역할을 할 농민들은 농업·농촌의 공익성과 농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교재를 자체 제작해 사전교육도 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지난해 수업 이후 학생들의 평가설문지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농업에 흥미가 생겼다. 앞으로 밥 먹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먹겠다’거나 ‘농업은 막연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치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같은 소감이 다수 적혀있다. ‘엄마가 농사를 하는 것은 알았지만 농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멋있는 일인지 오늘 배웠다’는 기특한 기록도 남았다.  

올해는 전남 강진군, 화순군과 영광군에서 수업이 진행됐고, 1학기에 예정된 마지막 수업이 지난달 18일 전남 영광군 법성중학교에서 있었다. 법성중학교는 1학년 17명, 2학년 17명, 3학년 29명으로 학년마다 한 반만 있는 농어촌지역 ‘작은학교’다.

농민이 하는 '농업' 수업
5교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법성중학교 3학년 1반 학생들의 눈빛이 교단에 모인다.

“제 소개를 할게요. 저는 농촌에 살고 있고 직업은 농민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농업, 농촌 얘기를 하려고 해요. 농업이 하는 역할이 뭔지, 왜 중요한지,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주경채(영광군농민회 홍농읍지회장) 농민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한 뒤 학생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농업’을 물어보고, 농업의 사전적 의미도 읽게 했다. 농업의 사전적 의미는 '토지를 이용해 작물을 재배하거나 동물을 사육하는 산업'이다.

“28년간 농사를 지어온, 내가 생각한 농업은 생명산업입니다. 농작물이나 가축과 같이 ‘생명’을 기르는 일이죠. 그리고 농민이 키운 농산물은 사람이 먹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아까 농업의 정의를 읽어봤는데, 농사는 반드시 토지를 이용해야 하죠? 땅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땅이 없으면 농사도 없는 거예요. 땅은 농민들이 갖고 있어야 농사를 짓는 데 쓰지, 건설업 하는 사람이 갖고 있으면 농사에 쓰지 않겠죠.”

알아듣기 쉽게 농업에 대한 설명을 했다. 농지가 얼마나 줄어들고 있는지, 농지 보전이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한 추가설명은 영상 교재로 생생하게 확인시켰다.

같은 층에 나란히 이어져 있는 2학년 1반에는 이석하(영광군농민회 사무국장) 농민 선생님이, 1학년 1반에는 노병남(영광군농민회 회장) 농민 선생님이 아이들과 ‘농업’을 주제로 수업을 했다. 주제는 같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재와 방식이 조금씩 다른 것도 흥미롭다.

이석하 농민 선생님은 “농업 하면 생각나는 거 뭐가 있을까” 질문을 하면서 수업참여를 유도했다. 여기저기서 나름의 중학생다운 답을 했는데, 한 학생이 ‘농민수당이요’라고 대답하자 선생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번진다. ‘아빠한테 농민수당 얘길 들었다’는 그 친구에게 대번 아빠 이름을 물어보고,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마을이장님 이름을 대자 이번엔 농민수당을 안다고 답했던 친구가 ‘아, 알아요’ 하더니 빙그레 웃는다.

이석하 선생님은 "농업의 가치는 한두 가지가 아니예요. 농민수당은 농민들이 가난해서 받는 게 아니고, 농업과 농촌 보존을 해 온 것에 대해 지금까지 보상없이 누려왔으나 국가나 지방정부가 앞으로 더 많은 공익적 기능을 해 달라고 보상차원에서 주는 거예요. 오늘 집에 가서 엄마아빠한테 농민수당에 대해 배웠다고 얘기해 보세요"라고 당부도 했다.

노병남 농민 선생님이 1학년 1반 친구들과 농업과 농촌, 농민을 주제로 수업을 하고 있다.
노병남 농민 선생님이 1학년 1반 친구들과 농업과 농촌, 농민을 주제로 수업을 하고 있다.
이석하 농민 선생님이 2학년 1반 친구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이석하 농민 선생님이 2학년 1반 친구들과 수업을 하고 있다.

농민이 하는 일, 농업의 역할
1학년 교실은 가장 명랑했다. 노병남 농민 선생님의 목소리는 복도까지 쩌렁쩌렁했고 농지 얘기를 하면서 ‘국토지킴이’, ‘전통문화지킴이’ 역할까지 하고 있는 농업과 농촌의 공익기능에 대해 설명했다. 지역의 축제 얘기, 농악 얘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아이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선생님 설명이 수업의 중심이지만 뉴스 영상과 농업 영상자료가 중간중간 아이들의 집중력을 붙잡아뒀다. 하지만 오후 수업시간이다보니 슬그머니 책상 위에 엎드리는 아이들도 하나둘 늘어나게 마련.  노병남 선생님은  “여러분 나이 때는 아무리 자도 졸리고,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게 당연한 겁니다. 점심시간 이후니 눈꺼풀과 투쟁할 시간이죠. 졸아도 돼요. 그런데 귀는 열어놔주세요”라고 말할 뿐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는다. 신기한 건 '안 듣는 것처럼' 엎드려 있던 아이들이 자기 편한 자세로 묻는 말에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귀는 열어둔 것이 틀림없다.
“화면도 오래보니 심심하죠. 자,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종자 얘기 한번 하게요. 이전 학교에 수업을 하다보니 종자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꽤 있더라구요.”
노병남 선생님은 1945년 해방 이후 종자 이름에 왜색이 짙은 문제부터 특이한 품종 이름의 유례까지 시대와 분야를 넘나들며 설명을 곁들였다. “종자산업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산업으로 여겨질 겁니다. 여러분도 농업이 다양한 분야게 관심을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6교시에는 최근의 식량위기가 조명됐다. 국제곡물가격이 폭등한 위기 상황에 ‘돈을 주고도 식량을 사지 못하는 위기’ 문제를 뉴스 영상으로 보고듣고,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21%에 불과한 실정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80%의 곡물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이유는 가축사료로 쓰이는 곡물 수입 부담이 크다는 점, 따라서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고기 소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료수입량이 늘어나는 관계도 눈높이에 맞게 설명했다.

28년간 농사를 지어온 주경채 농민 선생님이 3학년 1반 친구들에게 농업은  '생명산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8년간 농사를 지어온 주경채 농민 선생님이 3학년 1반 친구들에게 농업의 공익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학천 법성중학교 교장은 수업에 앞서 농민 선생님과 만난 자리에서 아이들의 먹거리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도시로 나가는 걸 당연히 여기지 말고 지역의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학천 법성중학교 교장은 수업에 앞서 농민 선생님과 만난 자리에서 아이들의 먹거리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도시로 나가는 걸 당연히 여기지 말고 지역의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것질도 '건강' 따져야
GMO의 유해성과 우리들이 먹고 있는 학교급식에는 전남도교육청과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GMO 농산물은 학생들에게 먹이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알렸다.

노병남 선생님은 식품첨가물 유해성도 설명하면서 “앞으로 과자나 가공식품을 사 먹을 때 생산연월일만 볼 게 아니라 표시성분을 반드시 확인하세요. 외국산이냐 아니냐부터 잘 살펴서 군것질도 건강하게 해야 합니다”, 딱 아빠 마음으로 차근차근 가르쳤다.

“수업이 재미없을 수도 있고, 농업에 관심이 없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농업은 우리 민족을 살려온 생명산업이라는 점 기억해주세요. 만약 농사를 짓겠다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앞으로 우리 지역에서 계속 농사 얘기 나눴으면 좋겠다”고 노병남 선생님은 인사를 대신했다.

법성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학교텃밭에다 농사를 짓고 수확한 농산물로 요리실습을 하면서 건강한 식습관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학천 법성중학교 교장은 아이들의 먹거리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도시로 나가는 걸 당연히 여기지 말고 지역의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농민선생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법성중학교의 1학년 학생이 '농민의 꿈을 보다' 수업이 끝나고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다.
법성중학교 1학년 학생이 '농민의 꿈을 보다' 수업이 끝나고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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