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용두산공원 사진사⑥ ‘한가운데서 찍은 사람이 천수를 누린다’

  • 입력 2022.07.2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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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영화나 드라마 등의 영상물을 제작할 때 ‘로케이션 헌팅(location hunting)’이라는 말을 쓴다. 시나리오에 맞춤한 야외촬영 장소를 찾는 일이다. 그런 거창한 용어를 쓰지 않을 뿐, 용두산공원에 사진 찍으러 나온 관광객들이라고 해서 아무 데서나 사진을 촬영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공원 사진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바에.

촬영장소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 ‘꽃시계 앞’이었다는 사실이야 앞서도 언급했었는데, 나중에 인화된 사진을 받아든 사람들이 한 결 같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목이 있다.

-꽃이 암만 이쁘면 뭐 하노? 거무튀튀하게 나오니 빨간색인지 노란색인지 알 수가 있나.

-시골극장 영화 선전하는 사람들도 ‘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우짜고 안 하드나. 사진기도 그렇게 총천연색으로 나오는 놈이 있으면 좋을 낀데.

그랬는데 사람들의 바람대로 1970년대 들어 컬러 필름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불평은 싹 사라졌다. 하지만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메울 수 없는 법, 한가한 시간에 공원 사진사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사진 찍은 다음에 필름 가지고 시내 현상소로 달려가고, 손님들도 지난주에 찍었던 사진 찾으러 일삼아서 다시 용두산 공원에 와야 하고, 아니면 우체국으로 달려가서 비싼 등기 우표 값 물어 가면서 부쳐주고…이런 번거로운 짓 좀 안 하는 방법은 없을까?

-카메라 셔터를 딱 누르자마자 즉석에서 사진이 차르르, 현상이 돼가지고 나온다면….

-하이고, 참, 이 친구 꿈도 참 야무지네.

꿈같은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뒤이어 폴라로이드라는 즉석카메라가 보급되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따라서 1970년대 후반 무렵에는 흑백사진기와 컬러사진기,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기 등 세 개나 되는 사진기를 주렁주렁 목에 걸고 돌아다녀야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생활양태나 풍습이 바뀌면서, 카메라 렌즈 저 편에 비친 사람들의 자세도 많이 달라지더라는 것이 이상훈 노인의 얘기다.

-잠깐만요. 그 쪽은 햇빛이 역광으로 비쳐서 사진이 잘 안 나옵니다. 반대편으로 서 주세요.

사진사가 위치를 옮겨 달라고 주문하자, 세 명의 남자는 우르르 반대편으로 달려가서는 자리다툼을 벌인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어떤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다고 몸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아까부터 맨 오른쪽이 내 자리였다카이. 니가 가운데 서라.

-내가 와 가운데 서노? 택도 없는 소리 말그라. 내는 장남이니까 오래 살아야 한다.

-그럼 내보고 일찍 죽으라카는 말이고?

“상식적으로는 한가운데에 서로 서겠다고 경쟁해야 하는데 그 반대예요. 셋이 찍을 때 정중앙에 서는 사람은 신상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그러니까 셋 중에서 젤 먼저 죽는다는 미신 같은 게 한 때 유행했어요. 그럴 땐 정리를 해주지요. 한 사람이 앞에 서고 두 사람이 그 뒤에 서거나 그 반대로 서라고.”

그런데 사진 찍을 때 가운데에 선 사람이 일찍 죽는다는 그 터부, 혹은 미신은 생각보다 스토리 구조가 매우 허술하여서,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찍는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잠깐 스쳐간 유행이었지요.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절대 안 바뀐 것이 하나 있는데, 카메라 앞에서 데면데면 하는 노인부부의 자세가 그것이지요. 모처럼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서 봄나들이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나섰으면, 포즈를 다정하게 취하면 좋잖아요. 그런데 다가가서 팔짱이라도 끼워줄라치면 질색을 하고 도로 떨어져요, 허허허.”

하지만 이상훈 씨가 말한 그 ‘지금’은 서기 2001년도다. 요즘이야 방송에 출연한 할멈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감의 볼에다 마구 입을 맞춰대는 세상인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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