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름나기는 부부가 유별

  • 입력 2022.07.24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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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폭염도 같이 시작되더니, 늘어지는 장마 덕에 살인적인 더위는 주춤합니다. 그 사이 유럽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산불까지 나서, 생활 자체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연중 고른 날씨와 고른 강수량을 자랑하는 지역인만큼 모든 생활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겠지요. 심지어 에어컨이 없는 가정이 대부분이라는데, 40도가 넘는 폭염에 어찌 견뎌내는지 먼 나라에서도 염려스럽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날씨는 4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따라 강수량의 차이가 커서 또 거기에 따른 삶의 방편들이 많습니다. 고온다습한 여름날씨에 입맛을 잃지 않도록 일찍부터 냉면이나 초계국수 등 시원한 음식이 발달한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찬 음식을 많이 먹어 속이 차지게 되면 몸이 상할까봐 여름 보양식으로 기운을 찾게 하는 등 여러 곳에 삶의 지혜가 녹아 있습니다. 이렇게 계절식이 발달한 나라도 드물다고 하니 그것도 일면 감사할 일입니다.

이런 여름철에는 농사일도 힘을 덜 쓰며 관리하는 일이 주가 됩니다. 한여름에 힘든 괭이질과 삽질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요. 대신 제초, 방제 작업 등의 관리하는 농사일이 많습니다. 물론 한여름 농사가 대부분인 강원지역이나, 복숭아나 자두 등 과수농가의 한여름 일이사 말할 것도 없겠지요. 지역 따라 농가 따라 농사가 다 달라서 특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 지역으로 보자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한여름에는 살짝 늘어지기 쉽습니다.

봄과 가을, 수확과 파종의 시기에 수 톤의 농산물을 들고 내리고 하는 어려움, 제날짜에 맞게 수확하고 파종하려고 품을 찾으며 동동거리던 극도의 긴장감도 이 철에는 살짝 비켜서게 됩니다. 사람이 부지런할 때는 한없이 부지런하지만, 게을러지자면 또 끝도 없이 늘어지게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비가 온다거나 턱없이 날씨가 더우면 날씨 핑계 대기 딱 좋습니다. 오늘만 날이가? 내일 하면 되지, 큰일도 없는데… 라는 이유가 줄줄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돌봄노동은 끝이 없습니다. 세 끼 밥을 해먹는 것은 물론이고, 텃밭의 마음 가벼운 작물들도 잠시만 손을 놓으면 풀천지가 되고, 집 주위의 조그마한 터에 한 포기의 풀도 일대를 덮을 만치 무섭게 자라납니다. 그러니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일상을 챙겨내야 빠지는 구석이 없습니다. 여기에 조금 욕심을 내서 들깨나 참깨라도 좀 많이 심으면 한여름 날씨 따위는 상관없이 비지땀을 흘리더라도 일을 쳐내야 합니다. 누가? 여성농민이.

이 늘어짐과 긴장감 사이의 묘한 관계 속에서 근자에 남편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시간 단위로 잘라서 일상을 마주하는 힘이 들어간 나의 눈빛과 달리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한 남편의 태도는 괜스레 짜증을 불러왔습니다. 뭣도 하고 뭣도 해야 하고 뭐뭐뭐도 해야 하는데 어쩌자고 선풍기를 껴안고 사냐고 타박을 하면서 불을 지르는 쪽은 당연히 내 쪽입니다. 그랬더니 일도 없는데 뭘 그리 빡빡하게 구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일이 없다고 느껴졌던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습관과 관점의 차이가 가져오는 입장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었고, 잔소리나 큰소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삶의 과정을 구석구석 유심히 살피면서 나눠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친구집에 갔더니, 오후 3시에 친구는 축사 안에서 소들이 먹다 남긴 지푸라기들을 쓱싹쓱싹 쓸고 있었고, 그 친구의 남편은 오침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부부유별은 여름나기에도 이런 모양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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