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시혜 아닌 공존을 위한 반찬나눔

  • 입력 2022.07.24 18:00
  • 기자명 박진숙(전남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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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숙(전남 곡성)
박진숙(전남 곡성)

주민자치회 활동을 하고 사회적농업 활동을 하면서 불편해지는 마음을 마주하곤 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그어지는 우리 사이의 선이 바로 그것이다.

활동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우린 선한 얼굴을 한 강자이고, 대상이 되고 있는 주민들은 사회적 약자가 되어 차별받는 존재로 규정되는 상황이 왕왕 있다.

우리사회 약자인 농촌에서 고령자나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임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정해졌고, 슬픈 현실은 이들을 대하는 행정뿐 아니라 당사자들마저도 본인이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를 증명해 보이려는 데 열심일 때가 많다는 거다.

새로 부임해오신 죽곡면 복지팀장님과 주무관님이 내가 관장으로 있는 죽곡열린도서관에 오셨다. 복지 사각지대 지역민에게 배정된 예산을 활용하여 반찬나눔을 하고 싶은데,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함께 지역이 연대할 방안을 강구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주민자치회 사무국장님과 사회적농업지역서비스공동체 코디님과 도서관 활동가님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모아봤는데, 역시 우리의 마음결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반찬을 받는 분이 단순 수혜의 입장이거나 반찬을 나누는 분이 시혜의 마음으로 하지 않았음 좋겠고 그러려면 몇 가지 장치가 필요했다. 주민자치회 ‘죽곡마을119’와 마을학교 ‘달려라손큰부엌’, 사회적농업지역서비스공동체 활동을 묶어보고 우리 지역 밥집들의 참여를 요청해서 활동을 확장하자고 결의했다.

우리 동네 밥집들이 함께해주면 매주 1회씩 하는 반찬 배달은 두 달에 한 번씩 반찬을 만들어 참여하면 돼 크게 부담되지 않을 듯 하고, 반찬을 사는 데 배정된 예산은 스테인리스 용기를 구매하여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전하는 이의 따순 마음까지 담을 수 있으리라.

문제는 반찬통의 수거인데, 주민자치회 ‘죽곡마을119’를 연결하면 쉬이 풀릴 일이었다. 매주 수요일에 28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활 불편을 해결해주는 죽곡마을119팀이 반찬 배달과 반찬통 수거를 맡아주고 겸사겸사 생활 불편 해결까지 함께 하면 주민자치회를 지역에 더 잘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민자치회 사무국장님이 밝은 얼굴로 얘기하신다.

식당들의 참여와 함께 한 번씩 마을학교 ‘달려라손큰부엌’도 참여하여 넉넉히 음식을 만들어 밥도 같이 먹고 반찬도 나누면 좋겠다며 마을학교 대표인 내가 제안했다. 반찬을 나눔받는 고령 어머니들을 음식 만드는 마을학교 선생님으로 모시면 나눔하고 나눔받는 이가 서로 구분되지 않는 서로돌봄이 될 것이다.

사회적농업지역서비스공동체 코디님은 고령인과 장애인이 함께 농사짓는 공유텃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반찬 나눔에 적극 활용하면 이 또한 서로돌봄이 되지 않겠냐고 강조하시곤 ‘죽곡마을복지지도’를 활용해 반찬 배달의 사례관리를 하겠다고 명석해 보이는 눈을 크게 뜨신다.

회의를 마치고 섬진강 어부이며 35년째 식당을 운영하시는 주민자치회 환경분과위원장님과 함께 죽곡면 식당을 돌며 취지를 얘기하고 참여를 요청드렸다. 열두어 곳이 전부인 죽곡의 식당 중 일곱 곳에서 함께 하시겠다는 고마운 마음을 얻었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곳간을 헐고 내놓는 그네를 만나고 오는 길에 우린 얼싸안고 환호했다.

농촌복지는 사업이 아닌 운동이며, 시혜가 아닌 공존을 위한 나눔이어야 한다. 아직 많이 미흡하지만 각자도생이 아닌 공유의 판을 키워가는 죽곡마을공동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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