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50] 이상한 지구, 고단한 농부

  • 입력 2022.07.24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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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오늘 아침 농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랫동네 이웃과 옛 이장님을 우연히 마주쳤다. 집에서 10분 거리지만 차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이웃들과 길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좀 드물다. 반가운 마음에 셋이서 차 시동을 끄고 30여분 동안 유쾌한 길거리 수다를 떨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수년간 애쓰는 교수님의 사과는 언제 나올 거냐며 걱정해 주셨다.

속으로 환경과 생태를 살리고 안전한 유기농 사과를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걸 심각하게 얘기할 분위기는 또 아니어서, 그냥 걱정해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그날 모처럼 비가 2~3일 동안 안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기에 연일 찔끔 찔끔 내리는 장맛비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 오던 석회보르도액을 살포했다.

6·7·8월이면 사과를 비롯한 모든 과수농가들은 병충해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이 시기를 잘못 넘기면 세균으로 인한 낙엽병, 황반병, 노균병 등은 물론 미국선녀벌레, 갈색날개매미충, 심나방, 담배나방, 응애 등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병해충들로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현장 농민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온난화가 어떻고, 한발과 홍수가 어떻고, 산불이 어떻고,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멸종하는 종이 해마다 얼마나 늘어나고, 식량부족으로 인류 먹거리가 어떻고 하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매년 각종 병충해가 얼마나 기승을 부리는지, 점점 강력하고 다양한 화학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날씨변동이 얼마나 심한지 등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이상한 지구 환경 생태를 조금이라도 살리겠다고 친환경농사를 고집하는 농민들도 많이 있다. 물론 아주 힘들다. 매년 안정적인 생산 자체가 어려우니 소득 안정화도 쉽지 않다.

아무튼 관행농사든 친환경 농사든 모든 농사꾼들은 고단하고 힘들다. 이상한 지구와의 외로운 싸움을 혼자 감내하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상한 지구와 싸우고 있는 고단한 농부 중 한 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날 낮에 기껏 석회보르도액을 살포했는데 예보와 다르게 밤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살포 후 3일은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약해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며칠 지나면 여린 이파리 끝이 타들어 가는 증상이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귀농 7년차인데, 10년이 지나가기 전에 유기농 사과를 제대로 생산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는 우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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