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산물 유통의 터미널 만들어야

  • 입력 2022.07.24 18:00
  • 기자명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가짜 농민들이 주변에 많이 생기고, 가짜 농민들이 농업 보조금을 타거나 농업부분에서 걷어 들여야 하는 세금을 회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잔기술들을 쓰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한편으론 거의 변화하지 않는 농업정책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기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중앙정부도 그러하고 지방정부도 그러하다.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농민의 한 사람인 나는, 그저 생색으로 보이는 쥐꼬리만 한 보조금에도 관심이 없고 떼먹을 세금도 없으니 오로지 농산물의 생산과 판매에만 신경을 쓴다. 몇 년에 걸쳐 농산물 판매로 힘들어 하던 큰아들 부부는 올해 생산한 딸기의 대부분을 체험장 운용으로 직거래 판매한 듯 하고, 둘째 아들은 올해 생산한 농산물의 상당 부분을 공판장으로 보내고선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생산한 올해의 농산물도 이제 막 판매를 시작했다.

일부 직거래 물량은 필자가 가격을 정해 판매하지만 직거래 이외의 잉여부분을 공판장으로 보낼 때면 늘 가격 때문에 불안하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필자 역시 ‘얼마가 나올까?’를 늘 생각한다.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기대치만큼의 가격이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평균적으로 기대치의 70% 선에서 가격이 결정됐던 것 같다.

공판장에서 판매된 필자의 농산물과 함께 유통되는 다른 농산물을 보면서 늘 마음속에 화가 차 있었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된 시기에, 지금처럼 많은 농업관련 기관과 조직이 있는 시기에, 지금처럼 물류의 배송이 빠른 시기에, 농산물 유통 책임의 상당부분을 생산자인 농민에게 맡기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협 조합장을 하면서 제안했던 내용이 있다.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것이다. 언론을 통해 다시 제안을 하자면 농산물 유통 터미널을 만들자는 것이다.

농산물 시장의 개방 압력이 높고, 농산물 소비에서의 수입산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시기에 우리 농산물의 유통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좀 줄이면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에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600개 넘는 생산지 농협이 있고, 농산물 유통을 지원하는 정부의 산하 기관들도 많으니 기존의 체계들을 조금만 손보면 농산물 유통에서 발생하는 농민의 좌절감과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들 것 같다. 농민들은 농산물 생산량을 예고하고 실제 생산량을 입력하고, 소비자들에겐 필요한 농산물을 찾을 수 있는 체계를 세워주면 농민과 소비자에게 상당히 유익할 것이다.

엊그제 우리 집 창고로 농산물을 사러 온 소비자 부부가 있었다. 차를 운전하고 온 남편 분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고, 부인되시는 분은 의구심을 나타내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일에 지쳐 있기도 했지만 ‘왜 이러시나’ 싶어 판매 안내를 하면서 불편한 게 있냐고 여쭤보니,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 이런 데가 더 비싸다”며 투덜거려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듣고 필자가 웃으면서 ‘본래 수박값은 원두막 밑이 제일 비싸고, 가락공판장이 제일 쌉니다. 그래서 가락공판장이 북적거리는 겁니다’라고 하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결국 작은 공감을 이뤄냈고, 지속적인 거래에 대한 구두약속을 하게 됐다.

농산물 유통을 조정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과 비용이 든다. 하지만 재래식 유통 방식으로는 농산물 개방의 피해를 막아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집의 세 농가는 간절히 직거래에 준하는 유통을 희망하고 이뤄가고 있다. 보조금을 받아먹기 위한 가짜 농민들이 생기고 세금을 떼먹기 위한 가짜 농민들은 땅을 너무 사랑한다고 하지만, 보통의 농민들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그 종사자들은 실적이 필요한지 몰라도 현장의 농민들과 소비자들에게는 실익이 필요하다. 그러니 600여개의 생산지 농협과 유통관련 정부기관, 또 소통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30여만의 농가들이 소비자와 함께 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 터미널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러면 여럿에게 이익이 생길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