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악화에 고통겪는 계약재배 농민들

  • 입력 2022.07.22 07:2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기상악화 및 농촌 일손부족 등의 악재가 겹쳐 학교급식 공급 농산물을 계약재배하는 친환경농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력 부족으로 아예 작물 수확을 못 하거나, 학교에 납품해도 ‘품위 저하’, 즉 병해 발생 흔적이 남거나 작물 생육 저하로 작물 크기가 작다는 등의 이유로 전량 반품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했다간 친환경농가의 위기가 ‘친환경 학교급식의 위기’로 전이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캐지 못한 감자 그대로 방치된 밭

경기도 연천군 농민 Y씨의 감자밭. 1,000평 면적의 밭엔 수확하지 못한 감자들이 그대로 땅에 심겨 있었다. 밭의 4분의 1 가량엔 잡초가 무성했고, 잡초 억제를 위해 덮었던 비닐을 거두지 못한 고랑들도 있었다.

Y씨는 올해 연천군 학교·군부대에 15톤의 감자를 생산해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올해는 심은 감자 중 50%, 즉 8톤 미만의 물량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수확도 하지 못했다.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외국인노동자도 극소수라, 아무리 일당을 높게 불러도 구할 수 있는 노동자를 찾기 어렵다. 인력을 구하려면 ‘예약’해 놓고 20~30일은 기다려야 한다. 진짜 문제는 그 20~30일 사이에 작물의 적정한 수확 시기를 놓쳐, 작물을 다 폐기하고 밭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거다. 제때 수확하지 못한 감자는 무르고 썩게 된다. 여기 밭의 감자들도 수확 시기를 놓쳐서 그대로 뒀다. 일할 사람이 없으니 비닐도 못 거뒀고 잡초 제거도 할 수 없었다.”

연천군 및 지역농협에서 농촌일손돕기 사업을 나름대로 벌이고는 있다. 서울시민들을 섭외해 농장에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농협 직원이든, 서울시민(대체로 직장을 은퇴한 고령의 시민들)이든 현실적으로 농작업에 큰 도움은 되기 어렵다는 게 현장 농민들의 설명이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대부분 농사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전량 반품된 6톤의 배추

경기 연천에서 친환경으로 배추농사를 짓는 한 농민이 지난 18일 학교급식에 납품했다가 품위 문제로 전량 반품된 배추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기 연천에서 친환경으로 배추농사를 짓는 한 농민이 지난 18일 학교급식에 납품했다가 품위 문제로 전량 반품된 배추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Y씨는 연천군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저장고에 저장된 배추들을 보여줬다. 말이 ‘저장’이지, 갈 곳을 잃은 배추들이다. 학교급식에 공급했다가 전량 반품됐기 때문이다. 왜일까?

“그동안 경험한 바 없는 이상기후 때문에 다수의 배추가 속썩음병에 걸렸다. 올해 연천의 기후는 가물었다가, 폭우가 쏟아졌다가, 또 갑자기 폭염이 찾아오는 식의 변화무쌍한 기후였기에, 여지껏 겪은 적 없던 속썩음병이 배추에 발생한 것이다. 학교에서 배추를 반으로 잘라보니 10개 중 4~5개가 속썩음병 걸린 배추라며, 3,000포기(6톤)의 배추를 전량 반품했다. 속썩음병 때문에 배추가 전량 반품당한 일은 올해가 처음이다.”

속썩음병이 발생한 배추는 안쪽에 그을린 듯한 검은 상처가 난다. 사실 이 부분만 전처리 시 베어내고 나머지 배추 부위는 충분히 사용 가능하다는 게 현장 농민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학교 내 전처리 노동 여력이 충분치 않고, 배추 병해 관련 교육·소통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병해가 발생하면 현재로선 Y씨처럼 전량 반품당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반품된 농산물은 Y씨의 배추만이 아니다. 저장고 다른 쪽엔 타 농가에서 납품한 대파 약 5톤이 쌓여 있었는데, 대파를 실은 카트엔 ‘전량 반품’이라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대파에 백납병이 발생해 학교에서 전량 반품 조치를 했다는 것이다.

우선 농산물 품위기준 조절부터

경기도 파주시 농민 김용구씨가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수확시기를 놓친 감자들이 그대로 있는 감자밭을 둘러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농민 김용구씨가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수확시기를 놓친 감자들이 그대로 있는 감자밭을 둘러보고 있다.

파주 농민 김용구씨의 감자밭에도 수확시기를 놓친 감자들이 그대로 심겨 있었다. 파주 농민들의 경우 지난해부터 기후변화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경기도 학교급식 품위기준 상 감자 1개당 150g 이상이 돼야 납품 가능한데, 지난해 이래 우리 농장 감자 크기는 달걀과 비슷한 수준이다. 1개당 110g이더라. 폭우와 폭염이 왔다갔다하는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감자에 역병이 발생했다. 파주 내 다른 농가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파주친환경출하회에서 학교·군 급식 납품 물량을 총 290톤 배정받았는데 생산량 저하로 220톤밖에 내지 못했다. 올해는 그 220톤도 겨우 채웠다. 군납엔 농산물을 내지도 못할 정도로 납품 가능 물량이 감소했다.”

김씨는 이어 “감자 외 다른 작물들도 출하량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경기도친환경학교급식생산자출하회 농민들이 공급 가능한 당근 물량은 약정물량 대비 30%도 안 된다”라며 “생산량이 저하됐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상기후로 농산물 품위가 전반적으로 저하돼 학교에서 요구하는 품위를 맞추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어 “현재 경기도·경기도농수산진흥원 등과 품위기준 재설정 관련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 현재 150g인 당근 무게 기준을 120g으로 완화하면 그나마 약정물량의 절반까진 맞추는 게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