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용두산공원 사진사⑤ “장군님은 오늘도 안녕하십니다”

  • 입력 2022.07.1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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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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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우, 15번! 그 자리 15번이 혼자서 전세냈간? 빨리빨리 찍고 비키라우!

-나는 오늘 여기서 처음 찍는데 와 그리 성화를 합네까?

-이것 차암… 가위바위보를 해서 순번을 정하든지 해야지 안 되갔네.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진 찍을 장소로 가장 인기가 있던 꽃시계 앞에서 벌어지는 소란이다. 더구나 그 곳은 장소가 협소해서 세 팀이 한꺼번에 찍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30명의 사진사들이 제가끔 고객을 데리고 와서는, 서로 꽃시계를 차지하려고 다투다보니 사진이 맘먹은 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드디어 용두산공원 사진사들이 시내 음식점에 모였다.

-꽃시계를 서너 개 더 만들 수도 없고, 무슨 수를 내야지 안 되갔시오.

-꽃시계를 아예 없애버리든지, 꽃시계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세금을 붙여서 회비를 왕창 걷든지 하는 거이 좋갔어.

-그럴 거이 아니라, 사진 찍는 구역을 나눠서 날짜별로, 아니면 시간대별로 교대를 하는 거이 어떻갔습네까?

“관광객들이 요구하는 그림은, 꽃시계 앞에 서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배경에 나오게 찍는 거예요. 그런 그림을 연출하려면 동시에 세 팀은 어떻게 소화할 수가 있는데 30여 명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다툼이 생기는 거지요.”

꽃시계를 둘러싼 소란은, 전체 사진사들을 열다섯 명씩 2개조로 나눠서, 사진영업 하는 위치를 서로 교대하는 방법으로 정리를 하면서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그러나 좋았던 시절의 얘기다. 내가 찾아갔던 2003년엔 꽃시계 앞이든 어디든, 공원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오는 손님이 아예 없어서 문제였다. 그럼에도 용두산공원의 사진사들은 그 ‘꽃 시절’에 정해놓은 규칙대로 오후 두 시가 되면 영업활동의 위치를 서로 교대한다.

시골에서 처음 부산 구경을 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모처럼 용두산공원을 찾은 부산시민들도, 부산항을 드나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물선들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혼자만 보고 감탄할 게 아니라 사진에라도 담아가서 누군가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진다.

-아저씨, 잠깐만요, 찍지 마이소! 저기 저 큰 배가 요만치 와서 지나갈 때 찍어 주이소.

-눈 감지 마시고, 여자 분은 머리카락 좀 쓸어 올리세요.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그런데 며칠 후, 사진을 찾으러 온 남녀가, 인화된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깨끗하게 잘 나오긴 했는데…아저씨요, 바다에 배 지나갈 때 찍었는데, 배가 와 없능교?

“시골에서 온 중년 부부가 지나가는 화물선을 꼭 사진에 넣어달라고 했는데, 찍으려는 찰나에 바람이 세게 불어서 촬영이 조금 지체됐어요. 나중에 보니 사진에 배가 없네, 허허허.”

이상훈 씨는, 그럴 때 어느 사진사가 둘러댔다는 유명한 말이 전해 내려온다고 들려준다.

-걱정 마십시오. 화물선은 그 뒤에 다 있습니다.

사진속의 바다를 가리키면서 그 뒤에 다 있으니 걱정 말라고 얘기하면 서로 웃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만큼 순박했다는 얘기다. 공원의 중심부에 있는 충무공 동상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가끔 벌어지곤 했다.

“충무공 동상 앞에서 사진 찍는 건 필수코스였지요. 한 번은 아들 딸 며느리 손자 등 십여 명의 대가족이 놀러 와서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단 말예요. 나름대로 구도를 잘 잡아서 찍는다고 찍었는데 나중에 찾으러 왔을 때 주려고 사진을 꺼내보니 아뿔싸, 동상이 안 보이는 겁니다. 한가운데에 선 둘째아들이 키가 워낙 커서 동상을 다 가려버린 거지요.”

-이순신 장군 발끝에서 투구 끝까지 다 나와야 한다꼬 신신당부를 했는데…이기 뭐꼬?

호통 치는 할아버지에게 이상훈 씨가 둘러대서 위기를 넘겼다는 말이 또한 어록에 남아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군님은 아드님 등 뒤에 편안히 잘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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