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방치 중인 ‘자유 진입 기종’ 농업기계

‘농업기계화 촉진법’상 ‘의무 검정 대상’ 아닌 경우

자율성 보장한다지만 성능이나 안전성 보장 못 해

피해 발생 시 농민 스스로 소 제기해 배상 받아야

  • 입력 2022.07.17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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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충청남도 논산시 딸기 재배 농민 A씨의 시설하우스. 지난해 말 H업체의 ‘난방기’를 사용한 뒤 가스장해를 입어 모종이 전부 고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제공
충청남도 논산시 딸기 재배 농민 A씨의 시설하우스. 지난해 말 H업체의 ‘난방기’를 사용한 뒤 가스장해를 입어 모종이 전부 고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제공

 

의무 검정 대상이 아닌 농업기계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농업기계화 촉진법(농업기계화법)에 따라 의무 검정 대상으로 고시된 농업기계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으로부터 종합·안전검정 등을 반드시 받고 차후 농촌진흥청의 사후검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의무 검정 대상이 아닌, ‘자유 진입 기종’에 속하는 농업기계 품목은 생산·판매 업체가 정부지원 모델로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농기계조합)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성능 또는 안전성 검정을 받지 않아도 되는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충남 논산의 딸기 재배 농민 A씨는 지난 2020년 주변인으로부터 ‘메탄올 난방기’를 추천받았다. 연기도 나지 않는 데다 업체서 공급하는 메탄올의 가격이 일반적으로 시설하우스에서 사용하는 등유보다 저렴해 경제적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A씨는 2020년 해당 농기계를 H업체로부터 구입했다.

이후 2020년 겨울에는 문제없이 시설 하우스 난방에 해당 기계를 사용했지만, 지난해엔 메탄올을 주문해 공급받은 뒤 사용한 지 하루 만에 가스장해가 발생해 운영 중인 딸기 하우스 3동 중 1동의 딸기가 모두 고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A씨는 “3동 중 2동은 기계가 중간에 멈춘 덕에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나머지 한 동은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해 가스장해로 모종이 전부 죽어버린 거다”라며 “하우스 한 동 매출이 평균 3,000만원 정도인데, 제대로 딸기 한 번 따지 못한 채 전부 잃었다. 업체에서 연료 주입 후 기계가 잘 가동되나 시운전을 했었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연료만 넣고 훌쩍 가 버려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H업체 측은 “일반적으로 연료를 주문하면 찾아가 연료만 넣어드린다. 기계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점검을 해달라고 하면 어느 때고 가서 점검을 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 수리를 하지만, 그런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연료만 주입하고 온 거다”라며 “사용하는 농민이 가동 후 이상이 발생했는지 알아차리고 조치를 했어야 하는 건데 피해가 발생한 걸 전부 업체 잘못으로 돌려버리니 입장이 난감하다. 기계 문제로 장해가 발생했는지도 알 수 없는 데다 정상적으로 검정받아 등록한 기계고 전국 시설하우스에 공급해 사용 중인데 그간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A씨는 “농민이 기계에 대해 어떻게 알겠느냐”면서 “계속 연락해도 안 받고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기계를 사용해 피해가 발생했으니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H업체가 판매 중인 기계는 농업용 난방기가 아닌, ‘이산화탄소 발생장치’와 ‘농업용 난방자재’로 등록돼 있다. 농업용 난방기의 경우 농업기계화법에 따른 의무 검정 대상 기종인데 반해 이산화탄소 발생장치와 농업용 난방자재는 종합검정과 안전검정이 의무사항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자유 진입 기종에 속한다.

농업기계 구입지원 사업 시행지침에 따라 농업기계 자유 진입 기종은 농기계조합이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자유 진입 기종은 다시 정부지원 모델과 일반농업기계 모델로 나뉘는데, 정부지원 모델의 경우 등록을 위해 필요에 따라 성능·안전성 검정을 거쳐야 하지만 일반농업기계 모델은 기계에 대한 설명이나 규격 등을 담은 서류 제출이 등록 요건의 전부인 실정이다.

A씨가 사용한 기계는 메탄올을 연료로 이산화탄소 발생 농도와 시설하우스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가진다. 의무 검정 대상인 농업용 난방기와 유사한 성능을 나타내고 농가에서 실제 이를 난방기로 인식해 사용하고 있음에도, 자유 진입 기종에 속하는 일반농업기계 모델로 분류되기 때문에 검정과 사후검정 등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A씨는 피해의 원인을 직접 밝혀야 하는 한편 업체 과실이 확인될 경우 배상을 위해 소를 제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최근 자재비·유류비·인건비 등이 큰 폭으로 올라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 사용 대신 기계화를 택하거나 보다 저렴한 자재 등을 구해 사용하려는 농민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초 농업기계 구입지원 사업 시행지침 개정으로 자유 진입 기종 모델에 대해 연 1회 이상 농기계조합이 구조변경 등을 점검해 필요한 조치를 하고 이를 농식품부에 보고하도록 제도가 일부 강화됐다. 하지만 정부지원 모델이 아닌 일반기계 모델의 경우 이를 점검·관리할 의무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농업기계 관리·감독의 빈틈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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