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⑯]46번 국도 타고 가는 내 고향 춘천의 오일장

  • 입력 2022.07.17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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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오일장의 전경.
춘천 풍물시장 오일장의 전경.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가 있다. 쫓기는 듯한 생활에 조금은 지쳐 힘들 때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춘천행을 감행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도시에 살 때 이 가사에 공감하며 춘천을 자주 오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시절 나와 춘천은 46번 국도를 통해 이어졌고 춘천은 내가 태어나 지리산으로 주거지를 옮기기 전까지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던 곳이다.

이번달엔 춘천의 풍물시장 오일장엘 가보기로 했다. 20년은 족히 지난 춘천의 시장 풍경이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볼일도 생겼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뵐 겸 하루 전 서울로 올라가 잠을 자고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춘천으로 향했다. 쇠락한 46번 국도 대신 고속도로를 타고 춘천을 간다. 마포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춘천의 풍물시장 오일장은 남춘천역과 연결되어 있다. 자동차로 가든 ITX를 타든 서울 사는 사람들은 동네 시장에 가는 것과는 좀 다르겠지만 마음을 내고 가서 즐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일장에서 아침 9시에 만난 류관희 작가님, 최주영 선생님과 아침을 먹기로 한다. 오일장을 다니기로 마음먹고 정한 것이 그곳이 어느 곳이든 오일장에 가면 장 안에서 밥을 한 끼 먹는 일이었다. 무엇을 먹을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보리밥집으로 향했다. 에어컨 없는 실내보다는 밖이 좋을 것 같아 나가 앉으니 안주와 술만 파시는 옆집 사장님께서 선풍기를 틀어주신다. 괜히 웃음도 나고 기분이 좋다. 더 좋은 건 문 앞에 놓인 가마솥이다.

가마솥에서 감자를 넣고 지은 보리밥. 

 

솥 안에는 딱 내 방식대로 지어진 보리밥이 가득하다. 감자를 크게 썰어 넣고 지어 미끈거리는 보리밥에 단맛을 더하는 방식이다. 밥도, 반찬도 국도 모두 먹고 싶은 만큼 떠다가 먹으라고 그릇만 챙겨주시고 주인장은 근처로 놀러 나가신다. 보리밥은 비벼 먹어야 제맛인데 비빔장으로 춘천의 막장과 고추장이 나와 있다. 그리고 막장에 끓인 배추된장국, 열무김치와 여름배추로 담근 알맞게 익은 김치, 그리고 나물 몇 가지다. 아직 밥이 솥으로 가득하니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했는데 새벽에 장터에 나온 판매하시는 분들이 벌써 한 솥 다 드시고 두 번째 해놓으신 밥이라 하신다. 40년째 새벽 4시에 나와 한결같이 밥을 하신다고 한다. 그 역사만으로도 맛있고 배부르다.

7월의 춘천을 기억하면 여름방학과 함께 붉게 익어가던 고야(춘천에서 부르던 토종자두의 이름)나무와 옥수수 말고도 생활비를 만들기 위해 심었던 외가의 채소밭이나 과수원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1년 내내 먹을 수는 있지만 특히 여름에라야 제맛인 올챙이묵(올챙이국수)이 있다. 장에 도착하자마자 올챙이묵을 찾아 눈동자를 굴린다. 한 아주머니가 양을 구분해서 두 곳으로 나누어 산더미(?)만 하게 쌓아 놓고 파신다. 사서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장 구경을 마치고 가면 다 팔리고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 두 집 건너 있는 수리취떡과 올챙이묵을 사서는 근처의 작은 수퍼로 달린다. 아이스크림 냉동고 깊숙이 있는 언 생수 몇 병을 사서 들고 주차장의 차로 간다. 아이스박스에 생수병과 올챙이묵, 수리취떡을 넣고 다시 오일장으로 간다.

 

사암리에서 기른 자두와 살구를 파는 상인.

 

장터를 어슬렁거리다 발길을 멈춘다. 거칠고 서툴게 쓴 글씨를 본다. ‘사암리 자두 살구 복숭아’, 내가 태어나 걸음마를 하고 자란 곳에서 나온 과일들이다. 무조건 한 바구니 산다. 상품성 떨어지는 자두 몇 개를 덤으로 주시겠다고 해서 거부하고 그 바구니의 자두도 함께 산다. 씻지 않았지만 자두 한 개를 꺼내 손으로 쓱쓱 문질러 한입 베어 문다. 새콤하고 달콤하고 습도 높은 여름날의 더운 불쾌함을 날려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몇 걸음 더 가니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여 숨을 멎게 하는 고야도 있다. 고야를 만나면 올챙이묵을 만난 것처럼 무조건 사야 한다. 외가의 밭둑에서 자라던 고야를 여름방학이면 입술에 물이 들게 먹던 추억이 나를 들쑤시기 때문이다. 작은데 씨도 크지만 일반 자두와는 다른 고야만의 맛이 있다.

없는 게 없는 오일장이지만 집안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던 메밀부침과 메밀총떡,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옥수수, 제일 먼저 나오고 가장 늦게까지도 먹을 수 있다는 미나리싹도 만났다. 춘천의 풍물시장 오일장을 나와 샘밭 막국수에 가서 막국수를 먹고 지내리 기름집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들기름을 한 병 샀다.

중앙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은 이미 사라졌지만, 오일장을 도는 동안 기억은 오히려 선명해지고 또렷해졌다.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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