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용두산공원 사진사④ “고무신공장 굴뚝 나오게 찍어주세요”

  • 입력 2022.07.1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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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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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공원에서 관광객 대상으로 사진영업을 하던 피란민 출신의 이상훈이, 그 활동무대를 용두산공원으로 옮겼다. 서른 명의 허가받은 사진사들 중 결원이 생겨서 용케 한 자리를 물려받은 것인데, 운 좋게도 ‘1번’이었다.

자, 이제 ‘용두산공원 1번 사진사’라는 완장을 찼으니 영업 준비를 해야 한다. 공원 안의 좋은 배경을 골라 찍은 사진으로 관광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견본을 만드는 일이다. 동료가 이런저런 사진들을 붙인 판때기 하나를 갖다 준다.

-자네 선임자가 서울로 이사 가면서 두고 간 사진 견본인데, 이래봬도 이 판때기에 붙은 사진의 배경이 우리 용두산 공원의 명물들이라고.

-그런데 홍보용으로 쓰기에는 사진이 좀 낡았네. 내가 다시 찍어서 새로 만들어야겠어.

-그러시게. 요즘 마침 화창한 봄날이라 견본사진 찍기에는 안성맞춤이지. 공원에 나온 여인들 옷차림도 울긋불긋하고 말이야. 사진이야 흑백으로 나오지만 그래도 고운 옷은 맵시가 난다니까. 저 쪽 충무공 동상 앞에서 한 방 찍고, 부산항 배경 삼아서도 찍고, 공원 명물 꽃시계를 빠뜨리면 절대 안 되지. 아, 참, 비둘기 사진 서너 컷은 꼭 들어가야 하네.

“견본은 곧 영업점의 간판이니까 잘 만들어야 하지요. 우선 날씨가 좋아야 하고 모델 물색을 잘 해야 돼요. 사진 잘 받는 얼굴형이 있거든요. 눈도 좀 검실검실하고 옷도 맵시 있게 입을 줄 아는 사람으로. 남녀 모델을 함께 찍기도 하고 따로 찍기도 하는데, 일주일가량 찍은 다음에 잘 나온 사진으로 열 장쯤을 골라서 판자에 정성껏 붙여서 만들었지요.”

드디어 1번 사진사 이상훈이 영업을 개시했다. 첫 고객으로 찾아온 여자 손님은 대뜸 손바닥에 비둘기를 올려놓고 찍은 사진을 지목했다. 자신도 그렇게 찍고 싶다는 얘기다.

요즘이야 공원마다 비둘기가 너무 번성해서, 동상 등의 조형물이나 시설물에 함부로 배설을 하는 바람에 귀찮은 존재가 되다시피 한 실정이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둘기들이 여간해서는 사람 가까이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애당초 공원을 조성하면서부터 비둘기 집을 넉넉하게 지어놓고 아침마다 모이를 주는 등, 비둘기를 공원에 붙잡아 두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어요. 그 결과 얼마 안 가서 무려 2천 마리로 불어났거든요. 하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가 버리니까….”

번식에는 성공을 했으나, 비둘기들과 화친조약을 맺는 일은 사진사들의 과제가 되었다. 유인책은 역시 식량원조였다.

-아가씨, 내가 팝콘을 한 줌 둘 테니까 조금씩 손바닥에 올려놓고 기다려 보세요.

아니나 다를까 비둘기는 팝콘을 먹으려고 관광객의 손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았고, 손바닥이며 어깨에 비둘기를 올려놓고 찍은 그 사진들은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되었다. 두 번째 고객은 한복차림의 노인부부와 20대의 아들이었다. 노인은 먼저 큰기침을 두어 번 하고나서 자신의 신상부터 늘어놓았다.

-내는 겡상남도 양산군 하북멘에서 왔소. 사진사 양반 명찰을 터억 보이깨네 이상훈이면…경주 니씨인 것 같은데, 내가 이래봬도 전주 니씨 효종대군파라….

왕실후손이라는 그 노인은 사진사를 이끌고 한사코 어딘가로 가더니 마침내 자세를 취했다.

-저어짝 연기 폴폴 나는 높은 굴뚝 안 보이요. 그 공장 나오게 찍어주라카이. 저 큰 회사에 누가 댕기는지 알아요? 여기 있는 내 막내아들이 댕긴다 아이요. 참말로 장하데이.

노인이 가리킨 곳은 신발공장이었다. 부산에 신발과 합판 산업이 번성하던 시절, 영남 남부 지역의 시골 청년들이 대거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공장은 일요일을 격주로 쉬었기 때문에, 노동자와 그 가족이 삼삼오오 공원으로 놀러오는 첫째와 셋째 일요일은, 용두산 공원 사진사들에게도 대목을 보는 날이었다. 모처럼 쉬는 날, 부모를 모시고 공원에 올라 흑백사진 한두 장을 함께 찍는 것만으로 큰 효도가 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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