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도체 산업이 무너진다

  • 입력 2022.07.1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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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지금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원재료 가격과 노동임금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재고증가·수요감소 요인이 겹치고 겹쳐 거래가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생산업체는 도저히 생산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며, 유통업체는 재고를 처리하지 못해 죄다 도산 위기에 처했다.

위기의 조짐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업체들의 자구능력을 넘어선, 재난에 가까운 변수인 만큼 정부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정부는 노골적으로 반도체 가격하락을 조장했다. 가뜩이나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제품 가격까지 상승하는 그림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엉뚱한 정책적 생색을 위해 하나의 산업을 망쳐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전자제품 가격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반도체 가격하락은 국민 가계경제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결국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만이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골든타임을 3개월이나 넘겨 미적미적 꺼내든 늑장 대책. 생산업체들의 ‘제 살 깎아먹기’를 유도한 이상한 대책. 이제 다시 3차 대책에 돌입한다지만 산업이 정상화되리라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문말윤초’의 이 기막힌 헛발질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실책이다.

아, 정말로 반도체가 무너진다는 건 아니다. 흔히들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하길래, 쌀의 상황을 반도체에 빗대 표현해봤다. 쌀을, 농업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란 이렇게나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것이다.

행여나 ‘뭐야, 반도체는 무사한거네’라고 안심한 사람이 있다면, 정신차리시라. 반도체보다 1,000배는 더 중요한 쌀이 지금 실제로 붕괴하고 있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는 말은, 산업을 국가로 격상해서 볼 때에야 겨우 반도체가 쌀과 동급이 된다는 얘기다. 반도체가 무너지면 우리는 지금보다 빈곤해질 뿐이지만, 쌀이 무너지면 굶어야 한다.

자본이 넉넉하고 변수가 적은 반도체 산업보다도, 농업엔 정부의 역할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그 역할이 바로서지 않았을 때의 폐해는 해가 다르게 텅텅 비어가는 농촌의 현실이 이미 보여주고 있다. 머잖아 저질 수입 농산물들을 금값에 사먹고 싶지 않다면, 정부의 농정 실책을 모두가 ‘눈 뜨고’ 바라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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