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어느 밭 귀퉁이에서

  • 입력 2022.07.10 18:00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두 달 만에 비가 왔다. 비가 그치기 전에 들깨를 심으러 밭에 가는데 어떤 이는 밭두둑에 또 어떤 이는 논둑에 엎드려 있다. 앞에 가서 확인을 하지 않아도 콩을 심는지 들깨를 심는지 알 수 있었다. 허리춤에 뭔가 두른 모습이면 콩을 파종하는 것이고 고무대야 같은 무언가를 끌고 다니면 들깨를 심는 것이다. 뭘 심느라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비를 내려줘서 고맙다고 하늘에 연신 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콩이나 들깨 그리고 참깨를 비경제작물로 키우는 곳은 자투리땅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물 시설이 안 되어 있다. 가족의 생계로 직결되는 경제작물은 물 시설을 해놔서 언제든 물을 댈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자투리땅에서 키우는 작물은 오로지 하늘만 쳐다봐야 한다.

보통은 맨땅에 들깨를 파종해놨다가 솎아서 옮겨 심곤 했지만 가뭄으로 싹이 나지 못하지 싶어 포트에 파종해 놨다. 모내기를 끝내면 곧바로 심을 수 있게 날짜를 계산해서 파종을 했는데 모종이 늙도록 비가 오지 않았다. 들깨 모종은 좁은 포트에서 멀쑥하니 웃자란 채 내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들깨 모종도 나도 비를 기다리느라 애가 탔다. 그러다가 비가 왔다.

비옷을 입고 비를 맞으며 들일을 한다는 사실이 전혀 불만스럽지 않았다. 질척거리는 장화는 무겁지 않았고 장갑에 들러붙는 진흙 또한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굳어버린 시멘트 같기만 했던 흙바닥은 호미로 살짝만 긁어도 구멍을 내줬다. 물을 흠뻑 머금은 흙바닥은 그 어떤 가시 돋친 응어리나 금이 간 항아리 같은 욕심마저 다 쓰다듬어주고 채워줄 것처럼 넉넉했다. 비좁아진 포트 안에서 뿌리를 웅크리고 있던 들깨 모종은 뿌리를 맘껏 내뻗을 수 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샐쭉샐쭉 웃는 듯했다. 간절함 뒤에 받은 축복이었다.

올해는 들깨 농사에 욕심을 더 냈다. 들깨를 수확하는 일은 콩을 털 때와는 다르게 어깨에 힘을 덜 주고 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쓰임새의 매력을 알고 난 후부터 해를 거듭할수록 활용도가 넓어졌다. 나물을 무치거나 볶을 때 참기름을 넣었을 때보다 들기름으로 양념을 하면 감칠맛이 더 좋았다. 들깨가루 또한 겨울에 따뜻한 차로 마시고 들깨죽은 포만감과 뱃속의 평안을 줬다.

나를 비롯한 호미를 운용하는 자들(여성농민, 간혹 남성농민)의 경향이 그런 것 같다. 그깟 들깨나 콩을 심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심지 못해도 그만이라는 속 편한 안일함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가족 경제에 큰 보탬이 되든 안 되든 자투리땅을 방치하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기어이 무언가를 심고 가꿔야만 제 역할 제대로 한 양 발 뻗고 잘 수 있다. 허리 꺾인 모종 하나 벌레 먹은 콩 한 알을 버리기 전에 머뭇거린다. 아끼고 아껴서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몸에 밴, 생명을 가꾸는 이들의 속성이다.

어느 밭 귀퉁이에서 또는 논둑 모퉁이에서 몸을 아끼지 못하고 더 낮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흐르는 계곡물처럼 땅에 엎드려 그녀들은 생명을 심는다. 대단한 명분을 새기거나 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작은 수고와 적극적이고 낮은 자세들이 결국은 한 나라의 환란에 빠진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을 확보해 가는 게 아닐까?

들에 사는 생명들이 땡볕으로 물기를 금세 빼앗기고 내쉬는 숨을 조절하며 갈증을 다스리고 있다. 다시 장마를 기다린다. 잦은 비와 습기로 곰팡이 필 성 싶은 이불이나 옷가지들을 햇볕 좋을 때 말려 대비는 해왔지만 그 찝찝하고 습한 기운을 기다리기는 처음이다. 한 쪽은 폭우 또 한 쪽은 폭염이라는 기상의 굴곡으로 나도 심어 놓은 들깨도 숨이 가쁘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