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용두산공원 사진사③ 송도에서 용두산으로 이적하다

  • 입력 2022.07.0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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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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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에서 내려온 삼사십대의 실향민들이 사진영업을 해서 먹고 살겠다고 용두산공원으로 몰려든 데에는, 카메라 한 대와 사진기술만 있으면 별 밑천이 없이도 밥벌이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에게 사진 값 일부를 선금으로 받은 다음, 부산 시내의 사진현상소에 맡겼다가 찾아다 주면 되었다. ‘영업방식’이 이처럼 단출하다 보니 마땅한 생계방편을 찾지 못 하고 있던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고…결국 사진사들 자신이 질서를 잡겠다고 나섰다.

-우선 공원에서 영업할 수 있는 사진사들의 숫자를 제한해야 합네다. 어드런 때에는 이 좁은 공원에 사오십 명이 몰려올 때도 있어요.

-다들 객지에서 벌어먹자고 하는 거인데, 누구를 오게 하고 누구를 못 오게 한단 말입네까?

-여기 모인 우리가 일단 단체를 만들자우요. 기렇게 해서 대표자를 뽑은 다음에, 그 대표가 공원 관리소 측하고 무신 협정을 맺든지 허가를 받든지 해야 되지 않갔습네까.

북한 사투리가 걸판지게 어우러진 그 자체 회의에서 ‘용두산관광사진회’라는 단체의 결성을 결의하였다. 공원에서 일할 수 있는 사진사의 수를 서른 명으로 제한하고, 사진사 개개인마다 1번부터 30번까지 고유번호를 부여하기로 한 것도 자체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회원들은 부산시에 일정액의 공원 관리비를 지불하도록 했다. 부산시에서도 ‘사진회’ 회원 이외의 외부 사진사는 용두산 공원에서 사진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기로 했다.

“인원을 30명으로 제한한 것도 그냥 한 것이 아니에요. 가령 봄철의 경우, 봄나들이 나온 상춘객(賞春客)의 수를 나름대로 추산을 해보고, 그들을 대상으로 사진 영업을 해서 적정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인원을 어림해서 그렇게 정한 것이지요. 나는 한 발 늦게 참여했지만….”

이상훈 씨가 들려준 얘기다. 그는 ‘한 발 늦게’ 용두산공원에 합류했다 했는데…하지만 그 이전에도 그는 ‘공원 사진사’였다.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 출신의 사진사들이 몰려들었던 곳이 부산에 또 있었다. 송도공원이었다. 송도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관광해수욕장이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만 유지했으나, 60년대 들어서는 송도의 버스종점과 거북섬을 잇는 케이블카와 구름다리가 설치되면서 시민들의 각광을 받았다.

-사진사 아저씨, 보트 타고 있는 모습 몇 장 찍어주세요. 잘 찍을 수 있지요?

-그러믄요. 자, 두 분이 보트에 올라타세요. 남자 분은 노 젓는 시늉을 한 번 해보시고. 좋아요.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사진 값은 지금 다 드릴 텐데, 그럼 사진은 언제 찾으러 오면 되나요?

-부쳐드릴게요. 주소가 어떻게 되지요?

-부산시 북구 삼락동…

“초창기엔 그렇게 영업을 했지요. 그런데 송도에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하니까, 송도해수욕장 뒷산에서부터 거북섬까지 연결하는 출렁다리를 만들었어요. 아, 그거 명물이었지요. 거기 올라가서 기념사진들을 찍는데, 잔뜩 멋을 부리고 데이트 하러 온 아가씨들이 겁 없이 삐딱구두(하이힐)를 신고 나왔다가 벌러덩 자빠지는 바람에…푸후훗.”

그 무렵엔 부산의 송도나 용두산공원 뿐 아니라, 서울의 남산공원을 비롯해서 각 지방의 관광지나 유원지에는 어김없이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그 중 상당수가 이북출신의 실향민이었다.

“한 번은 황해도 동향 출신의 이춘빈이라는 친구와 술자리를 했는데,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됐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용두산공원의 1번 사진사였어요. 공원 측에서 부여받은 사진사 허가번호는 양도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송도공원보다야, 시내 한복판에 있는 용두산공원이 사진영업 하기엔 훨씬 낫지요. 그래서 내가 1번 사진사 자리를 물려받아 꿰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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