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블라인드 경매 시행 … 응찰자 정보 가린다

법원, 도매법인 항소 기각 … “경매 공정성 공익 크다”

  • 입력 2022.07.03 18:00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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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경매사가 응찰자의 정보를 알지 못한 채 경매를 진행하는 블라인드 경매를 가락시장에서 시행할 예정이다. 서울 가락시장 경매장에서 채소 경매가 이뤄지는 가운데 중도매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경매사가 응찰자의 정보를 알지 못한 채 경매를 진행하는 블라인드 경매를 가락시장에서 시행할 예정이다. 서울 가락시장 경매장에서 채소 경매가 이뤄지는 가운데 중도매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가락시장에서 경매사가 응찰자 정보(중도매인 고유번호)를 알지 못한 채 경매를 진행하는 블라인드 경매가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 5월 26일 서울고등법원은 경매시 응찰자 정보를 가리라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사장 문영표, 공사)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겠다며 5개 도매법인이 제기한 항소심에 대해 “경매사와 중도매인들 간 담합 의심을 해소함으로써 경매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공익이 크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지난달 18일 도매법인 측에서 법원의 기각 판결에 상고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2년 넘게 이어져 온 공사와 도매법인 간 법정 공방이 막을 내렸다. 동시에 가락시장에 블라인드 경매가 도입될 것으로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기록상장, 낙찰가격 임의조정, 셀프낙찰 등 경매 비리가 만연하자 가락시장 관리자인 공사는 2020년 도매법인에 경매진행시스템 개선 조치명령을 통해 경매시 경매사가 응찰자 정보를 알 수 없도록 보완하고자 했다. 하지만 농협공판장을 제외한 5개 도매법인은 3차에 걸친 공사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당해 11월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인 2021년 9월 법원은 취소소송에 대한 기각 판결을 내렸고, 도매법인이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최근 법원이 다시 한 번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 것이다.

항소심에서 도매법인은 공사의 개선조치 명령(응찰자 정보 가리기)이 ‘중앙도매시장의 업무규정을 변경하기 위해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된「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17조 5항과 81조 2항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업무규정은 경매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니라 경매 입찰·정가수의매매 등 도매시장에서 이뤄지는 농산물 거래 방식에 관한 사항이다(농안법 시행규칙 16조). 법원은 “전자식 경매의 구체적인 방법을 업무규정으로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응찰자 번호를 경매사의 노트북에 표시할지 여부는 조례 시행 규칙의 개정사항이라고 볼 수 없다”며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응찰자를 가리면 경매사의 핵심 역할을 형해화해 농안법 28조(경매사의 업무 등)를 위반하며 경락자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응찰자 정보가 필요하다는 도매법인의 주장에도 법원은 ‘경매사가 응찰자 정보를 반드시 알아야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또 경매사가 응찰자 정보를 꼭 알아야 할 경우, 중도매인 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ESC 기능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항소심에서 도매법인이 새로 추가한 ‘경매사들은 응찰자의 정보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명시된 내용에 대해선 NCS가 법규적 효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응수했다.

한편 도매법인이 1심 때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블라인드 경매 시 재경매율이 높아질 거라는 주장에는 실제로 공사의 조치명령에 따라 2020년부터 블라인드 경매를 시행해왔던 농협공판장의 사례를 들었다. 농협공판장의 경우 공사가 판매원표 관리지침을 개정하면서 블라인드 경매와 상관없이 재경매율이 하락하고 낙찰가격이 상승했다. 법원은 “응찰자 가리기 시행으로 재경매율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을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고, 평균낙찰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결국 법원은 경매사가 낙찰가격을 임의로 조정하거나 특정 인물에게 밀어주기 경매를 했던 사례에 비춰 블라인드 경매가 담합 의심을 해소할 수 있는 조치라 판단했다. 또 1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도매법인에 개선조치를 명하는 처분이 경매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모두 보호하는 측면이 있다”고 판시했다. 경매과정에서의 공정성·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생기는 공익이 도매법인이 벌어들이는 수수료 손해(사익)보다 중요하다는 선언이다.

곽길성 가락시장품목별생산자협의회장은 “농민들은 도매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매를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영도매시장에서 공적 기능을 해야 하는 경매사가 특정 법인 소속으로 선택적 응찰을 하면서 특정 출하자에게 특정 가격을 선도한다. 보이지 않는 불공정 사례들과 담합의 가능성이 있었다. 블라인드 경매는 가락시장에서 경매가 갖고 있는 불공정성을 인식하고 투명성과 공공성이 확보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면서 “법인들은 지금까지 자본력을 앞세워 중도매인이나 출하자를 압도해왔다. 소비자·생산자를 위해 더 공정한 거래 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도매법인은 농안법에 따라 공사의 조치명령을 위반해 경고처분을 받은 상태다. 공사 관계자는 “행정처분의 이유는 처분이 아니라 실행이 목적이다. 얼마 전에 판결이 확정됐기 때문에 법인도 시스템을 구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 사항을 검토해서 (블라인드 경매를) 추진할 생각이다. 시행 후에는 농협공판장 때처럼 반·분기별로 데이터를 분석해 출하자나 낙찰가격에 부정적인 요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후 점검도 실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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