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이름이 중요하지요

  • 입력 2022.07.03 18:00
  • 기자명 김승애(전남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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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애(전남 담양)
김승애(전남 담양)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제일 먼저 이름을 지어준다. 그 이름을 지을 때 부모든 주위분들이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의미를 담게 된다. 세상의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거나 건강을 바라는 마음도 있고, 출세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말이다.

한 사람의 이름에도 깊은 뜻이 있듯이 단체를 만들거나 회사를 만들 때도 의미가 있다. 그 이름에는 그 단체의 정체성이 담기기 때문이다. 농민회는 농민들이 모여 농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또, 역사와 전통을 알 수 있거나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면 ‘창평현역사문화연구회’는 과거 창평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모임이고, ‘6.15공동선언실천 전남본부’는 2000년 6월 15일 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는 통일관련 단체라는 것이다.

농촌마을에는 어디든 부녀회가 있다. 멀게는 일제강점기부터 만들어진 ‘부녀회’라는 명칭, 그 후 70년대에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새마을 부녀회’가 농협의 관리를 받으며 전국적인 조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농촌의 여성들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고 새마을 부녀회를 중심으로 마을의 대소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 마을의 아이들이나 연로한 어르신들을 돌보는 돌봄의 역할, 공동체를 끈끈하게 하는 역할 등 정말 농촌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부녀회라는 명칭이 아쉽다. 이 명칭이 가지는 한계로 인해 점점 고령화되는 농촌마을의 공동체도 영향을 받고 있다. 부녀자라는 틀에 갇히고 싶지 않은 여성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아비 부에 계집 녀, 남편이 있는 부인들과 아버지가 있는 딸들로 세상의 여성들을 분류해 놓은 단어로 인식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여성은 여성 그 자체로 존중받고 주체적인 존재인데 말이다. 또, 현대에는 결혼을 서두르지 않다 보니 마을에 미혼여성이나 비혼여성도 같이 살고 있는데 명칭 때문인지 그들은 자발적으로 부녀회의 활동에 동참하기를 꺼려하기도 한다.

농촌사회의 부녀회도 사실 고령화 되어 있다. 고령 여성농민의 건강상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 분들이 마을의 대소사뿐 아니라 지자체의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해 오셨기에 지역의 큰 축제나 행사도 무난히 치러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동안 무상으로 동원된 여성 자원봉사자들의 열정이 지자체를 지탱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다. 그리고 지역소멸의 위기에 처한 농촌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로 여겨지는 것은 옳지 않다. 당당한 주체적인 여성으로 대우해 주어야 하고 부녀회 또한 그런 사람들의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칭부터 ㅇㅇ부녀회가 아닌 ㅇㅇ여성회로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사는 마을도 올해 규약을 개정하면서 ‘유천리여성회’로 개칭했다. 이제 내가 사는 마을의 회장님은 부녀회장이 아니라 여성회장이다. 여성회 회원들은 익숙해지고 있는데 마을 어르신들은 여전히 부녀회장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계셔서 매번 설명을 하고 있기에 시간이 좀 필요하지만 그래도 만족해 하신다.

또한 택호로 부르기보다는 이름을 불러드리는 운동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곡댁’이 아니라 ‘노흥남 여사님’하고 불러드리니 몇십 년 만에 이름을 찾았다고 좋아하신다.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이웃마을에도 전파되고 있다. 우선 ㅇㅇ마을 여성회로 이름부터 바꾸고, 관에서 부탁하는 일들을 봉사하는 것만 하지 말고 그에 걸맞은 주체적인 활동계획을 세우자고 말이다.

내년 조합장 후보님들께 명칭 변경에 대해 제안을 드리니 전국적인 조직이라 개명이 쉽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개명은 주체들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 사람들 중에는 이름의 의미가 너무 옛날 방식이거나 너무 흔한 이름이거나 하면 언제든지 개명을 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지역에 남면이라는 곳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어느 지역이나 동·서·남·북면이라고 별 의미없이 지명을 만들어 통치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우편물이나 택배 현장에서 불편함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투표를 통해 가사문학의 유래가 자랑스러운 지역의 정체성을 살려 가사문학면으로 지명 변경을 했다. 학교의 경우도 이런저런 이유로 구성원들과 지역주민, 졸업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교명 변경을 한다. 그런 이유들은 모두 시대에 걸맞고 더욱 발전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여성들 또한 성평등한 마을에서 좀 더 주체적인 존재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누구의 아내, 뉘집 며느리, 누구의 딸이 아닌 바로 ‘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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