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용두산공원 사진사② ‘공원 사진사’의 탄생

  • 입력 2022.06.26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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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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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라는 말은 언제부터 우리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을까? 아마도 우리의 주거형태가 서양식으로 바뀌면서 거기 걸맞은, 제법 고상해 뵈는 그 외래 말이 장식으로 도입되었을 터이다. 그렇다고 빈한한 시절의 상징이었던 우리네 초가삼간이라고 해서, 실내장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가집이든 양철집이든 기와집이든…일단 시골집 안방 문의 문고리를 당겨 열고 들어서면 마주보이는 벽면의 상단에 떠억 버티고 있는 그것, 사진틀이다.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한 신랑 신부의 모습이 사진틀 하나를 차지하고, 한 옆으로 친척과 하객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 걸린다. 배경은 대체로 신부네 집 마당이다. 병풍 뒤편으로 지붕의 처마가 보이기도 한다.

-자, 신부 고개 좀 들어봐요. 조금만 더! 옳지 됐어요. 저 쪽 신랑 어머님! 얼굴이 가려져서 안 보여요. 조금 옆으로! 됐습니다. 저 쪽 끝에 있는 거적뙈기 좀 치워요! 보기 흉하니까.

사진사는 나무 삼각대에 사진기를 올려놓고 검은 천을 뒤집어쓴 채,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기도 하고, 직접 앞으로 나가서 자세나 매무새를 고쳐주기도 한다. 피사체의 구도가 잡혔다 싶으면 나무로 된 필름 케이스를 끼웠다가, 필름을 안에다 남기고는 케이스를 빼낸다.

-자, 움직이지 마세요. 하나 둘 셋 하면 찍습니다. 눈 감으면 안 돼요. 하나, 둘, 셋!

그러나 사진사가 눈을 감지 말라고 당부를 했음에도 하필이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눈을 깜박거리는 바람에, 결혼식 사진 속에는 항용 ‘긴 수면에 든’ 사람이 한두 명씩은 있기 마련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그나마 다행인데, 흐린 날이나 야간 촬영을 할 때에는 조명을 위한 별도의 수단이 동원된다.

“흐린 날엔 마그네슘을 터트려서 그 불빛으로 촬영을 했는데, 일종의 화약이지요. 퍽, 소리가 제법 크게 나니까 사람들이 움찔 놀라서 눈을 감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부산에서 만났던 한 할아버지 사진사의 얘기다.

그렇게 찍은 그 집 주인 부부의 결혼사진은 사진틀 속에서 주인공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 부부의 나이가 환갑 진갑을 지나면 사진 속 옛사랑의 연지 곤지도 희미해지고, 사진의 색깔도 누렇게 변한다. 액자 가장자리엔 파리똥 얼룩도 더해진다. 대신에 도회지에서 찍어 보낸 자식과 손자녀의 사진들이 옆에 걸리거나, 혹은 사진틀 구석 여기저기에 꽂히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그 집의 가계도(家系圖)가 갖춰진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휴대하기 편리한 외국산 소형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중반에는 대한광학공업주식회사에서 ‘코비카’라는 국산카메라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한편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온 북녘 출신의 실향민들 중 상당수는 용두산에 판잣집을 짓고 기거하면서, 국제시장에 나가 행상을 하거나 힘겨운 부두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휴전협정 이후 판잣집이 철거되고 공원이 조성되었다. 용두산공원은 1957년에 대통령 이승만의 호를 따서 한동안 우남공원(雩南公園)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60년대 중반에 다시 용두산공원으로 환원되었다.

변변한 휴식공간이 없던 시절, 용두산공원은 나들이 나온 시민들과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모처럼 부산 항구와 시내 중심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에 놀러 나왔는데, 아무런 흔적 없이 그냥 돌아갈 수야 없지 않겠는가.

-자, 사진들 찍으세요! 잘 찍어서 싸게 빼드릴 테니까 저 쪽 바다를 배경으로 서보세요!

피란민들 중, 사진기술은 익혔으나 시내에 사진관을 차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몰려들었다. 부산시에서는 어떻게든 질서를 잡아야 했다. 그래서 1번부터 30번까지, 서른 명의 사진사들에게만 공원에서의 ‘사진 영업’을 허용하기로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 사진사’는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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