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용두산공원 사진사① 용두산공원에서 ‘1번 사진사’를 만났다

  • 입력 2022.06.19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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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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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에 서울에 처음 올라간 시골사람들이, 본격적인 ‘서울 살이’에 앞서서 시가지 구경을 위해 일단 먼저 오르던 곳이 남산이었다. 남산에 처음 올랐을 때 나는 이런 탄성을 내질렀다. “야, 집들 많다!”

부산의 용두산은 서울로 치면 남산과 같은 곳이다. 용두산공원에 오르면 크고 작은 배가 부단히 드나드는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중앙동, 광복동, 남포동 등 부산의 중심거리가 발밑에 놓인다.

2001년 8월에 취재차 용두산공원에 올랐다.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의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공원은 산책 나온 시민들로 활기가 넘쳤다. 노인들은 나무그늘 아래에 장기판을 펼쳤고, 가족단위로 산책 나온 시민들은 대형 화물선이 드나드는 항구 쪽을 바라보거나,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며 오후 한 때를 즐긴다.

그런데 공원을 구경하러 올라온 사람들과는 반대로 군데군데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는, ‘구경 나온 사람들을 멀거니 구경하고 있는’ 노인들이 있다. 공원의 이 곳 저 곳을 찍은 견본사진들을 커다란 판자에 붙여서 옆에 세워두고, 사진기 두어 개씩을 목에 건 이 사람들은,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공원 사진사’들이다. 그 사진사들 중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사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던, 1933년생 이상훈 씨다.

-누구를 찾으신다고요? 성이 이 씨고…이름이 뭐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사람 찾겠나. 여기메서는 이름은 필요 없고 몇 번 사진사인지를 알아야 돼.

-이상훈이면 1번 사진사 아닌가? 저기 이순신 장군 동상 밑으로 가보시라우요.

-그 동상 아래 가서 1번 사진사가 누구냐고 물어보시오.

부산의 대표적인 공원에서 사진사 노릇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하는 말투에서는 부산 사투리가 아닌, 멀리 북녘 평안도나 함경도의 음색이 묻어난다. 사진사 대부분이 전쟁 통에 피란 나왔던 실향민들이기 때문이다. 충무공 동상 아래에서 예순아홉 살의 이상훈 씨를 만났다.

“사진사가 한 30명 되니까 일일이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편의상 몇 번 사진사, 몇 번 사진사, 이렇게 번호를 부르기로 우리끼리 내부적으로 정해 놨어요.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선불로 받지 않겠어요? 그때 끊어주는 영수증을 들고 나중에 공원으로 사진을 찾으러 올 때에도, 이름으로 찾는 것보다 몇 번 사진사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야 금방 찾아요. 우리 사진사들은 동란 이후 지금까지, 이름 대신 번호로 살아온 셈이지요, 하하하.”

이상훈 씨는, 사진사들을 이름 대신 번호로 호칭하게 된 내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란(6.25 전쟁) 이후 이름 대신 번호로 살아왔다’는 얘기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여기 용두산에 처음부터 공원이 조성된 건 아니었어요. 전쟁 난 이듬해(1951년)의 1.4 후퇴 당시에, 북에서 밀려 내려온 실향민들이 갈 데가 없으니까 이 일대에다 하꼬방들을 짓고 몰려 살았지요. 그러다 드디어 휴전이 되고, 부산에 내려와 있던 임시정부가 서울로 환도를 하고 나서, 비로소 공원화 개발계획이 추진된 겁니다. 그때 하꼬방들을 다 철거했어요. 하지만 여기가 부산시민의 휴식공간으로서 명소가 된 데에는, 1955년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공원 중심에 세웠던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지요. 너도나도 동상 구경하겠다고 몰려왔으니까요.”

황해도 출신의 이상훈 씨는 어떻게 해서 용두산공원의 1번 사진사가 되었을까? 지금부터 이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녘 출신인 그들이 어떤 경로로 부산 시민이 되어서 ‘공원 사진사’로 살게 되었는지, 또한 그들이 수십 년 동안 사진에 담아왔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되짚어볼 것이다. 고단한 세월의 민중사를 카메라로 기록해온 공원 사진사들…. 또 아는가? 그들이 내보인 빛바랜 사진들 속에서, 헤어진 옛 연인의 모습이 불쑥 나타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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