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⑮] 남쪽 바다를 담고 있는 곳, 남해 오일장

  • 입력 2022.06.19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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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남해를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사천쯤에서 나가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남쪽으로 내려간다. 한 구비를 돌면 바다가 보이고 바다인가 싶으면 산길을 끼고 돌면서 가는 길이라 길을 가는 재미가 있다. 차를 세우고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풍광들이 발길을 잡지만 쉽게 차를 세울 곳은 없다. 정말로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려 서리라도 하고 싶은, 비파들이 노랗게 익은 밭도 지난다. 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오일장에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면 있을 것이므로 그냥 간다.

남해는 4월부터 시작한 멸치잡이가 아직 한창이다. 오전에 남쪽 끝 미조항엘 가면 멸치잡이 배들이 들어와 소리를 내며 멸치를 터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4월에 시작해서 6월이면 끝이 나는 작업인데 5월 중순엔 멸치로 축제를 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서둘러 가면 멸치를 터는 장면도 보고 오일장 구경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장은 마늘축제와도 맞물려 여기저기 구경을 하려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남해 오일장은 남해군청이 있는 번화가 전통시장 안에 선다. 언뜻 보기에 어디에나 있을법한 동네 작은 시장 같은데 입구를 들어서서 걷다 보면 농산물을 주로 파는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해산물 시장도 서는 제법 알찬 시장이다. 가게나 난전들 사이사이 밥집들이 있고 물건을 팔러 나오신 분들은 그 밥집들에서 점심을 배달시켜 드신다.

이번 남해 오일장에는 남해의 특산물로 익히 알려진 멸치와 마늘들이 약간씩 나와 있다. 아마도 이삼십 분 거리에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생산자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조금 전 지나오며 본 것과 똑같이 몇몇 어르신들의 노랗게 익은 비파들도 많이 나와 있다. 사진을 좀 찍자고 하니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먹어보라고 한 줌 주셨다. 들척지근한 단맛이 올라오는 비파 맛이 제법 좋다. 살구나 매실처럼 시지 않아서 노인들이 드셔도 좋겠다. 아직 푸른 매실도 제법 나와 있고 제비콩과 호랑이콩도 나와 있다. 사가는 사람 생각해 그릇에 까 담으면서 파는 분이 계시다. 혼자 장 보러 오신 남자분이 콩을 한 바구니 사시면서 덤을 더 달라고 흥정을 하신다. 깎아 주고 덤도 얻는 재미가 오일장의 재미가 아니냐고 하시면서. ‘그렇지, 이런 잔잔한 재미가 있지 오일장에는’ 하면서 웃다가 자리를 뜬다.

해산물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생청각도 나와 있고 6월에만 만날 수 있다는 독새우도 보인다. 여수 쪽과는 달리 이곳에선 귀한 몸이라고 미리 다 예약한 것이라 팔지도 않는 걸 팔라고 졸라 보기도 한다. 산골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별로 먹어보지 못한 해산물들에 관심이 가니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 늘 건어물 파는 곳에서나 보던 서대 생물도 나와 있는데 마른 서대보다 한참 비싸다. 아직은 제철인 멍게도 많고…. 장터에 퍼질러 앉아 회 한 접시 놓고 술 한 잔해도 좋겠다. 돌아가야 해서 본격적으로 장을 본다.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남해전통시장에서 열리는 남해오일장의 채소 좌판들의 모습.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남해전통시장에서 열리는 남해오일장의 채소 좌판들의 모습.

 

사진 찍으라고 선뜻 허락해주시고 먹어보라고 집어주시던 비파를 잊지 않고 한 바구니 사고, 시어머니 좋아하시던 생청각도 한 바구니 샀다. 해 먹어본 적은 없지만 지금 제철이라고 몸값 비싼 독새우도 몇 마리 산다. 물론 멸치도 조금 사고 일 끝나고 한 잔하고 싶어 돌멍게도 한 바구니 챙겼다. 얼음을 넣어서 포장해 달라고 해 차에 실어 놓고는 다시 오일장으로 향한다. 상인들이 많이 드시는 음식으로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남해 오일장에서 눈에 들어온 음식은 콩칼국수죽이다. 보통의 냉콩국수가 아니라 따뜻한 콩물에 끓인 것이다. 상인들께서 추천해주시는 콩칼국수죽집을 찾았다.

일행과 같이 간 죽집은 모시잎으로 국수를 밀어 콩죽으로 끓여주신다. 이 지역에서는 초상이 나면 장례식장에 이 콩칼국수죽을 끓여 문상객들을 먹인다고 주인장께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일 수 없어서 요즘 운영이 좀 어려웠으나 이전엔 장례식장뿐 아니라 동네 노인정이나 단체들이 주문을 많이 했었다는 말씀과 함께 명함도 주신다. 멀리 남해의 오일장에 와서 이 지역만의 특별한 음식에 대해 배우니 좋다. 달달한 국수죽이라서 단 음식 좋아하지 않는 내가 다음에 또 올 것 같지는 않지만 뭐든 배우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남해 오일장은 오가는 길이 아름다워 즐겁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눈을 뜨게 되는 기쁨을 주었다.

 

콩칼숙수로 끼니를 해결하는 시장 상인들.
콩칼숙수로 끼니를 해결하는 시장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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