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매실 예찬

  • 입력 2022.06.19 18:00
  • 기자명 정영이(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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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이(전남 구례)
정영이(전남 구례)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고 겨울을 나면서 겨울 가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가 사는 마을은 매실마을이다. 집집이 매실 농사를 짓다 보니 매실 수확을 시작하는 6월이 되기 전에 다른 마을보다 빠르게 모를 심는다. 봄이 오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비는 애면글면 속이 타들어가는 농민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통 내리지를 않았다. 모를 심을 논배미에 알탕갈탕 물을 대고 나서야 긴 한숨을 내쉬는 농민들의 등 너머로 저수지는 흉측하게 바닥을 드러냈다. 모는 심었지만 긴 가뭄에 온갖 작물들이 타들어가는 것은 어찌해볼 수가 없다.

이른 더위와 긴 가뭄은 매실에도 타격을 주었다. 목이 타 몸살을 앓는 나무에 달린 열매는 굵어지지 않고 낙과가 심하거나 더러는 나무가 말라죽기도 했다.

그래도 온 마을이 6월 한 달은 북적북적하다. 노쇠한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자녀와 친지들이 찾아오고 택배차도 매일 부지런히 드나든다. 공동선별기가 있는 작업장에서는 새벽녘부터 따온 매실을 선별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이 오랜만에 누구네 집 자식들도 만나고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무거운 박스작업 등은 서로 돕는다. 농산물 경매장에 보낼 물류차가 들어오는 저녁 무렵에는 상차작업을 하느라 대부분의 매실농가가 마을 광장에 모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새참과 막걸리를 챙겨 나와 하루 사이에 반토막이 나버린 낙찰가격을 탓하기도 하고, 가격을 잘 받으려면 선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상회로 보내야 하는지 정보들도 나눈다. 코로나 뒤 끝에 간만에 생기가 도는 마을 풍경이다.

필자 또한 20여년 가까이 매실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과거엔 물류 시스템이 지금처럼 빠르지 않아 쉬이 물러지는 황매보다 풋매실을 따서 유통하기도 하면서 청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고집스럽게 황매를 예찬했던 터라 직거래로 주문받은 매실을 진초록색이 노르스름해지거나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홍매를 보내 ‘이걸 매실이라고 보냈느냐!’고 화를 내는 소비자들에게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최대한 나무에서 잘 익은 매실을 보내달라는 소비자들이 많다. 황매 시기인 6월 20일 즈음까지 기다리는 동안 태풍을 맞기도 하고 장마와 더위에 낙과가 많은 것은 피하기 어려운 난제이지만 향과 맛이 부드럽고 효능도 좋다고 하니 황매를 고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엿이나 올리고당, 설탕을 대신해 요리에 많이 쓰이는 매실액. 중국에서는 3,000년 전부터 건강보조 식품이나 약재로 써왔다는 매실은 강한 살균과 해독작용으로 덥고 습한 여름에 시원한 음료로 즐겨 마시게 되면 식중독 예방과 식욕을 돋우는데 탁월하고 숙취 해소에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해열제나 소염제, 소화제를 상비약으로 비치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요긴하게 쓰였다는 매실이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며 최근에는 항암식품으로도 알려졌다. 동의보감에는 ‘매실은 기를 내리고 가슴앓이를 없애며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하고 근육과 맥박이 활기를 찾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6월 한 철, 향긋한 매실향과 탐스럽고 오진 매실과 보내는 시간이 내 건강의 비결이고 고된 노동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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