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무관세 수입, 농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 입력 2022.06.19 18:00
  • 기자명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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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고 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으로 수많은 목숨이 생명을 잃고 지금도 목숨을 위협받으며 삶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여파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전쟁은 전 세계 경제에도 파격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4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과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이 전 세계 증시 하락에 영향을 줬다는 소식에 경제 당국은 분주하다.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침착하게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눈에 보이기 쉬운 성과를 이루기 위해 성급한 태도로 움직인다.

물가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농축산물이 물가상승의 주요 요인인 것처럼 보도된다. 매일 매일 없어서는 안 되는 먹을거리의 부분이라 체감도가 높겠지만 과도하게 지목되는 것에서 의도가 보인다. 일부 품목의 가격이 평년에 비해 상승한 것이 전부인 마냥 포장됐고 그 피해는 전체 농축산업에 미치게 됐다. 특히나 가격이 불안정한 신선 농산물은 한번 소비가 위축되면 큰 타격을 받게 되지만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너무나 개탄스러운 건 외국산을 수입해서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의 태도다. 정권도 바뀌고 강산도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외국산을 저율관세로 수입해서 물가를 잡겠다는 발상이다. 마치 물가안정의 불멸의 진리가 외국 농축산물 수입인 것마냥 어김없이 이번에도 고개를 내밀었다.

세계 곳곳에서는 이미 식량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기초 원자재 값이 오르고 에너지, 주요 곡물가도 오른다는 소식을 연일 접하는 시기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외부 요인으로 생산에 투입되는 여러 생산비 항목이 상승하고 여기에 가뭄까지 겹쳐 최악의 악재다. 하지만 국내 농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보다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수입산으로 공급이 늘고 가격이 하락하면 다시 소비가 정상화될 것이라 기대하는 듯 하다. 하지만 대체재가 국내산에서 수입산이 됐을 때 국내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고 외국산에 의존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듯하다.

이렇게 수입돼 들어오는 외국산 농축산물은 높은 농자재비와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을 절망하게 만든다. 수입산에 비해 국내산은 비싸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고 이는 국내농업에 치명타가 돼 돌아온다. 우리 농산물의 값이 폭락하면 내년 농사에도 큰 타격이 가고 결국에는 농민이 농사를 포기하게 된다.

2004년 4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고 난 이후 지금까지 58개국과 18건의 FTA가 발효됐다. 그야말로 FTA 강국 대한민국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세는 낮아지고 무관세로 수입될 품목도 늘어날 예정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고 전 세계 농민들은 ‘WTO가 농민을 죽인다’라는 절박한 구호를 외치며 저항했다. 그러나 FTA에 이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2022년 2월 발효됐고, 이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한국농업에 희망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수입의존도가 더욱더 높아지는 한국에서 식량주권을 과연 이야기할 수 있을까. 희망마저 논할 수 없다면 무엇을 붙잡고 청년들에게 농업과 함께해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청년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그들의 꿈을 농업에서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지금의 농정에서는 불가능하다. 정부의 농정철학이 정립돼야 한다. 수입의존이 아닌 자국 농업의 생산기반과 농민의 보호 육성이 식량주권 실현의 가장 기본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 관점이 정립돼야 농민을 위한 정책이 펼쳐질 것이고 그 속에서 농업의 미래가 다시금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니 바깥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터라 갑자기 내리는 비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 가뭄에 내리는 비가 너무나 반가웠다. 메마른 땅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니 가뭄으로 가슴 졸이던 농민들이 기뻐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쩌면 지금 메마른 이 땅이 우리 농업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메말라가고 있는 한국농업의 고통은 농민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님을 하루빨리 인지해야 한다. 단비가 내려 잠시 촉촉해지기는 하겠지만 장기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또다시 고갈돼 버린다. 더 늦기 전에 메마른 농토가 해갈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다해야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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