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청계천⑧ 6.25 이후 달라진 천변풍경

  • 입력 2022.06.1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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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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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이 되자 북녘으로부터의 피란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전쟁이 끝나자 오갈 데 없는 피란민들은 우선 급한 대로 청계천 쪽으로 몰려들어서는, 양쪽 석축 위에다 다투어 판잣집을 지었다. 이제는 천변풍경이 거대 판자촌 군락으로 바뀐 것이다.

개천가에 얼기설기 만든 판잣집에서 생활해야 했던 피란민들의 고충이야 새삼 말해 무엇 하랴. 그러나 그 때부터 청계천도 더불어 된 몸살을 앓게 되었다.

“청계천을 따라 거의 전 구역의 양쪽 편으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지요.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예요. 말이 집이지 잘 해야 두 평 정도밖에 안 되는 쪽방들이었어요. 그러니 변소를 따로 마련하고 말고 할 공간이 있겠어요? 대소변을 그냥 개천으로 쏟아 버리는 거지요. 나는 해방된 뒤로는 청량리로 이사 가서 살았는데, 어쩌다 어린 시절 뛰놀던 예지동이나 주교동 쪽으로 가보면 하천의 물도 더럽고 악취가 지독했어요.”

이성선 할아버지의 얘기다. 그가 어린 시절 병아리를 키우고 동무들과 전쟁놀이를 했던 개천가 모래밭에도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청계천 모래바닥 여기저기에다 아궁이를 설치하고 그 위에다 반으로 자른 드럼통을 가마솥 삼아서 앉혔어요. 판잣집 피란민들도 뭐든 해서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복을 드럼통에 넣고 염색을 해서 시중에 내다 팔았던 겁니다. 지나가다 내려다보니, 까맣게 물들인 군복들을 빨랫줄에 좌악, 널어놨는데…천변 모래밭이 온통 거대한 염색 공장으로 변해 있더라고요.”

이후, 이북에서 내려온 전쟁 피란민들에 더하여, 지방에서 무작정 올라온 사람들까지 집단으로 개천가에 거주하게 되면서, 청계천의 오염은 점점 더 심해졌다. 하지만 오염문제를 떠나서 생각을 해보면, 나라에서도 달리 생계 대책을 세워주지 못 했던 그 절대적 빈민들에게 그만한 공간이라도 선뜻 내어주었으니…청계천의 헌신에 일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청계천변에서 태어나 청계천과 함께 자랐던 ‘천변 아이’ 이성선은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1950년대 중반에 전역을 했다는데….

-야, 이게 얼마만이야. 우리 군의관 친구께서 드디어 전역을 했다 이 말이지? 제대기념으로 한 잔 안 할 수 없지. 자, 오늘 저녁엔 특별히 방석집으로 모실 테니 따라오라구.

-방석집이라면…어디 요정에라도 간다는 말이야? 너무 과용하는 것 아냐?

-걱정 말고 우리만 따라와. 너 일단 술집 이름부터 외워둬라. ‘나이아가라!’

-나이아가라? 무슨 양주 파는 집이야? 그런 데 가면 비쌀 텐데….

이성선은 친구들이 가자는 대로 일단 따라갔다는데, ‘나이아가라’라는 술집은 요정은커녕 청계천변의 그 무허가 판잣집들 중의 하나였다.

“판잣집을 좀 크게 지어놓고 술을 파는, 말하자면 포장마차 격이지요. 술시중 드는 아가씨들도 있어서 함께 젓가락 장단 치면서 노래도 하고…. 나중에 듣기로는, 사다리를 타고 판잣집 2층 다락으로 올라가면, 거기서는 은밀히 매음(賣淫)도 했다더라고요.”

청계천에서 비단잉어를 잡고, 천변에서 병아리를 키우고, 다리 위에서 가오리연을 띄우고 놀았던 그 꼬마가, 어느 덧 일흔네 살의 백발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어, 전설처럼 사라져버린 추억을 더듬는다. 토요일 저녁, 종각에서 시작한 산책길이 세운상가를 거쳐 주교동 쪽으로 이어지지만, 그 거리에 옛 자취를 상기할 만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이든 서울토박이들이 즐겨 부른다는「서울야곡」이라는 노래를 그가 나직나직 흥얼거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에 /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 / 내 맘 같이 그대 맘 같이 꺼지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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