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채소 가격 좋다는데 ··· 현장은 정작 ‘산지폐기’ 고민

‘농산물 가격 폭등’ 기사 범람 ··· 농가 피해엔 관심 없어

“유통 개혁하지 않으면 공염불 ··· 근본적인 문제 다뤄야”

  • 입력 2022.06.12 18:00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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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지난달 27일 경남 창녕군 대합면 도개리 들녘에서 사단법인 한국마늘연합회 직원들이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도와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7일 경남 창녕군 대합면 도개리 들녘에서 사단법인 한국마늘연합회 직원들이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도와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양파 수확이 한창인 전라남도 영암군. 활기 넘치는 수확철 농촌을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양파 가격이 상승한 현재 시점에서 1만3,000평의 양파밭을 일궈온 영암군 양파 재배 농민은 지금 산지폐기를 고민하고 있다.

농산물값이 오르자마자 ‘농산물 가격 폭등, 비상’이라거나 ‘양파 가격인상 우려’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가운데, 양파밭을 갈아엎어야 손해가 안 난다는 농민의 호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농산물 가격이 오르게 된 이유는 농촌에 가뭄이 덮쳐 생산량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노지 밭작물들의 작황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 이달 엽근·양념채소에서 모두 가격 강세가 예측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이 조사한 6월 관측월보에 따르면 배추·무의 경우 재배면적 감소와 작황부진이 맞물려 5월부터 출하량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다음달까지 감소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대부분의 주산지에서 생육이 부진한 탓에 평년대비 노지봄배추는 8.8%, 노지봄무는 15.8%의 생산량 감소가 예측된다. 봄양배추 생산량도 평년대비 17.3% 줄었고, 봄당근도 같은 이유에서 예년보다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양파·마늘·대파도 마찬가지다. 중만생종 양파의 경우 생육 초기 냉해 및 가뭄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특히 더 감소(평년대비 -19.2%)할 전망이다. 올해 초 194ha 산지폐기가 이뤄졌던 양파의 지난주 평균 거래가격은 1,057원(kg)으로 그 전주(620원) 대비 크게 올랐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곡선을 보이는 이면에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 몸살을 앓고 있는 산지의 모습은 주류 언론을 비롯해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농가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가뭄 때문에 전화가 많이 오는데 생산량이 줄어서 농민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아니라 ‘농산물 가격 폭등’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정작 가격 떨어질 때는 관심도 없다”고 지적했다.

무안군에서 마늘을 재배하는 농민은 “생육 초기부터 30% 이상 결주가 생겨 대책이 시급하다 했었는데, 지금 보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완전 재해 수준이다”라며 “마늘밭 전체가 노랗게 타 버린 지역도 있더라. 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가격이 올랐다 해도 큰 소득이 없다. 결국 또 농가만 피해보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정충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사무처장은 “대규모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괜찮을지 몰라도 중소농들은 힘든 상황이다. 특히 미리 밭떼기로 계약해둔 경우에는 농민들보다 유통업자들이 이익을 본다. 예년에 비해 가격이 올랐다고 하지만 농민들의 소득이 보장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충청남도 서산시, 간척지에 마늘·양파를 심어놓은 농민들의 경우에는 가뭄으로 물 공급이 안 된 탓에 밭에 염도가 올라오면서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양파 40kg을 생산했던 농민이 올해는 같은 면적에서 20kg 밖에 생산하지 못했다는 증언도 있다.

곳곳에서 농촌의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닷새 만에 양파가격이 1만3,000원대로 20% 이상 뛰어 우려된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농민이 거래했던 시점에는 양파가격이 현저히 낮았다. 강선희 정책위원장은 “생산자는 5,000원도 못 받고 팔았는데 2~3주 사이에 소비자가격이 1만4,000원이 됐다. 이 차액을 누가 가지고 가는 건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면서 “(농산물이) 비싸더라도 소비자들은 농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구매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산 양파의 수익금이 농민이 아니라 중간 유통업자들에게 돌아간다면 국민들도 분노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물가상승의 주범이 마치 농민인 것처럼 얘기된다. 유통을 말하지 않고 생산에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언론에서) 호도하는 건 정부가 생산자 입장에서 수급정책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지난 2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농민단체장 간에 열렸던 농정 소통 간담회에서 양파·마늘 생산자단체는 농가 소득보전과 소비자 물가안정을 위해 △공공비축 10% 이상 실시 △가격결정위원회 구성 △투명한 양파·마늘 유통개혁 등이 포함된 요구안을 농식품부에 전달한 바 있다.

양파·마늘의 경우 특히 밭떼기 거래와 유통업자들의 시장 교란이 심각한 상황인데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농민과 소비자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유통 과정에서 투명성·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는 문제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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