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47] 단비

  • 입력 2022.06.12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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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지난주 농사일기에 가뭄이 한 달 이상 지속돼 걱정이라고 썼는데, 이번주 농사일기는 영동지방에 단비가 내려 해갈이 다소 해결됐다고 쓰게 됐다.

학수고대하던 단비가 사흘 내내 적당한 속도로 내렸다. 이슬비보다는 조금 굵은, 가느다란 비가 알맞게 꾸준히 내렸다.

소낙비같이 굵은 비가 단시간에 쏟아지는 것보다는 이런 촉촉한 비가 오래 내리는 것이 훨씬 메마른 땅에 잘 스며들게 되고 해갈에 도움이 된다. 적어도 우리 지역 밭농사는 어느 정도 해갈이 된 듯하다.

비가 멈춘 지난 화요일 아침 일찍 밭에 나와 호미로 과수원 밭을 파 보았다. 그렇게 메말라 딱딱하기조차 하던 땅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촉촉하다.

흑진딧물 때문에 돌돌 말려 있던 나무 끝부분의 잎들도 용케 새순이 솟아나고 있다. 그동안 움츠렸던 사과나무들이 힘을 얻어 연한 가지들을 앞다퉈 내밀고 있다.

열다섯평 정도의 텃밭과 다섯평 정도의 틀 밭에 조금씩 심어 놓은 옥수수, 고추, 가지, 오이, 감자, 고구마, 강낭콩, 당근, 토마토, 상추, 맷돌 호박, 단호박, 아스파라거스, 시금치, 부추, 들깨, 대파 등 이십여 가지의 작물들도 모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를 맞고 생기가 넘치는 듯하다. 사람이 주는 물도 식물에 도움은 되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훨씬 좋다.

그러다 문득, 조금 있으면 장마철이 돼 비가 너무 많이 내리지 않을까 또 걱정이 된다. 4~5월의 봄가뭄이 기승을 부리다가도 6~7월이 되면 비가 또 너무 많이 내려 농작물이 습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다. 지지난해에 어린 사과나무 삼십여 그루가 습해를 입어 뿌리가 상했다.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거나 다른 묘목으로 대체했던 기억이 있다.

사과나무를 키운 지 7년차가 되는 동안 가뭄으로 인한 한발 피해도 겪어 봤고, 홍수로 인한 습해도 입어 봤다. 뿐만 아니라 4월이면 가끔 찾아오는 냉해도 입어 봤는데 사과꽃이 대부분 떨어지는 피해가 발생해 한 해 농사가 4월에 이미 끝나버렸던 피해도 당해본 적 있다.

나만 겪어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농부들은 이렇게 한발, 홍수 그리고 이상저온 등의 기상재해를 매년 한 가지 이상씩 겪으며 농사짓는다고 보면 된다. 관행농업도 어렵고, 친환경 농업은 더 어렵고 힘들다.

인간에 의해 훼손되고 파괴된 지구는 기후와 환경과 생태계의 극심한 변화를 초래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의 먹거리를 생산해 내야 하는 농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그 기상재해를 농민들이 알아서 극복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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