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돌봄주체가 ‘며느리’만 있나요?

  • 입력 2022.06.05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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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지난 4월 결혼을 하면서 저를 부르는 이름이 많아졌습니다. 남편이 생기면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아주버님, 형님, 시누이와 조카들이 생겼고, 그러면서 저는 며느리, 동서, 새댁, 새신부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새로 생긴 그 이름들이 썩 마음에 듭니다. 저는 새로 만난 가족들이 참 좋습니다.

결혼하고 맞은 첫 어버이날 인사차 시댁에 들렀는데, 대화를 하던 중 자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싶은지 물으셨고, 시아버님은 행여 어머님이 부담이라도 주실까봐 ‘그냥 둘이 여행 다니면서 재밌게 살라’며 아이 이야기를 딱 자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는데 시누이가 ‘시댁 와서 고기 굽고 그러지 말라’며 조카에게 집게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시댁 가족들이 며칠 신랑집에 다녀가기로 해서 저도 갔었습니다(필자 부부는 강원 홍천과 화천에서 따로 거주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시부모님과 시누이 가족들은 모내기를 앞두고 바쁜데 함께 해줘서 고맙다며 함께 지내는 내내 너무 잘해주셨습니다. 음식하느라 힘들까봐 직접 하시거나 나가서 먹자고 하셨고, 오히려 잠깐 짬 났을 때 즐기라며 주변 관광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신혼 초,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일 수도 있고, 시집 잘 가서 시댁에서 대접받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새로 만난 가족들이 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주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며느리’라는 역할에 가둬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난 소중한 사람으로 대해주시는 그 마음에 저 역시 그분들이 너무 소중합니다. 들에 나는 산나물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보면 시댁 생각이 납니다. 다들 ‘며느리’는 뭔가 어렵고, 부당한 것으로, ‘시’자는 다 힘든 것으로 말하는데 저는 며느리 된 것이 참 좋습니다.

예전에 ‘부녀회’에 관해 썼던 글이 생각납니다. 결혼 전엔 ‘며느리’가 아니어서 가입할 수 없었던 마을 며느리들의 모임 말이에요. 최근 홀몸어르신 돌봄사업을 위한 ‘새마을부녀회 새마을며느리봉사대’라는 이름으로 발대식이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많고 많은 이름들 중에 왜 하필 며느리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부녀회’라는 이름도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며느리봉사대’까지 나타났습니다. 홀몸 어르신들을 돌보기 위한 단체가 왜 꼭 며느리여야 할까요? 너무 좋은 사업에 그렇지 못한 이름입니다. 제 또래의 여성들이 ‘며느리’를 싫어하는 것은 ‘며느리’ 자체가 안좋은 것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강요하는 역할이 그런 인식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요.

저희 마을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들과 자녀들이 제법 있습니다. 다들 선하고 부지런하기로 유명합니다. 그 부모님들도 자녀들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워하십니다.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농촌에서 고부가 함께 산다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농촌 일의 대부분이 공동체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나의 일과 남의 일이 딱 잘라 구분되지 않고, 출퇴근이 없는 농사일은 정말 힘듭니다. 서로 힘든 데다 내 일이 아닌 것까지 해야 하니 몸이 견디질 못해 마음까지 병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그렇게 서로 부딪히고 얽히면서 함께 살아낸 분들이 이제는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싶기도 하지만, 또 보기 좋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런 며느리들에게 꼭 찝어 돌봄과 봉사는 너희들의 몫이라고 굳이 이름까지 그렇게 붙이는 건 며느리가 되어 너무 행복한 저도 좀 불편했습니다.

며느리라는 이름이 사랑하고 아껴야 할 새로운 가족으로, 돌봄은 사회와 모두의 몫으로 함께 인식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돌봄이 누구 한 명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돌봄에 어울리는 다양한 이름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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